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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김대중 칼럼] 다른 나라에서 온 대통령인가?

평생 대통령 9명 봐왔지만 文만큼 폐쇄적 대통령 처음… 대립하는 국민 이끌 지혜 없어
盧 ‘정치하면 안 될 사람’ 평, 이제 보니 제대로 본 것… 野 단일화만이 亂脈 해결책

김대중 칼럼니스트

입력 2020.12.01 03:20

 

 

 

 

 

문재인 대통령이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회의에 참석하고 있다./뉴시스

50년 넘게 언론에 종사하면서 대통령을 9명 겪어봤지만 이런 정권, 이런 대통령은 처음 봤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처럼 반(反)타협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폐쇄적 패거리 의식에 젖어 있는 대통령은 없었다. 어느 대통령이든 자기 철학이 있고 자신의 이념 체계가 있으며 자기가 몸담았던 환경의 울타리를 벗어나기 어렵기 마련이다. 하지만 역대 대통령은 정도 차이는 있어도 자기 고집대로만 막무가내로 정치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어제(30일) ‘대한민국의 위대한 2020년’을 언급하며 “방역과 경제 모두에서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위기에 강한 나라로 진면목을 보였다”고 자화자찬했다. 이 말을 들으며 동조하는 국민이 얼마나 있을까. 어느 다른 나라에서 온 대통령 아닌가, 의심스러웠다.

집권 3년 반이 지난 이 시점에서 본 ‘문재인’은 외골수의 아집 그 자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를 가리켜 ‘정치하면 안 될 사람’이라고 했다는데 그 말이 어째서 나왔는지는 몰라도 적어도 그는 ‘문재인’을 바로 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정치에 맞지 않는 사람, 정치해서는 안 될 사람, 대통령이 돼서는 더욱이 안 될 사람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문제는 서로 생각이 다른, 때로는 파국적으로 대립하는 국민을 이끌고 가는 지도력이 없다는 데 있다. 어제 발언에서 보았듯이 그는 매번 핵심을 피해가며 ‘미사여구 정치’에 빠져 있다.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고 의지의 강함과 약함의 문제도 아니다. 문 대통령에게서는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탈원전, 나랏빚 내서 퍼주기, 집값 폭등, 대북 굴종, 친중국, 탈미국 등 이 정권의 경제와 안보는 이제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멈출 줄 모른다. 조국 옹호, 울산 선거 개입, 추미애의 난장, 윤석열 찍어 내기 등 일련의 사태에서 보여준 문 대통령의 처신은 한 정파 수장의 태도이지 국민적 이견을 조율할 위치와 책임이 있는 대통령의 자세가 아니다. 더구나 그의 침묵과 방관은 은연중에 조장과 부추김으로 이어지고 있고 정치는 더욱 난장판으로 가고 있다. 국민은 마침내 대통령의 무능에서 부재(不在), 나아가 무용(無用)론을 체득하고 있다.

왜 이렇게 됐을까? 애초에 우리가 잘못 본 것일까? 아니면 그와 그의 일당이 뛰어난 연기와 말솜씨와 거짓말로 우리를 현혹한 것일까? 장기 집권을 통한 대한민국 체제 변신을 호도하기 위한 위장술에 우리가 속은 것일까? 이제는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586 운동권에게는 다른 사람과 타협하는 것을 ‘지는 것’으로 여기는 풍조가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물러나면 우리는 죽는다는 배수의 진에 익숙하다. 여유와 실력이 없으면 타협하는 것을 곧 패배로 여긴다.

 

어떤 경우든 이제 문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무엇을 주문하고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다. 비판이나 비난은 더더욱 의미가 없다. 그와 그의 수하들에게는 누구의 말도, 어떤 경고나 욕설도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이쯤 되면 한국 정치는 갈 길이 두 곳뿐이다. 숨 막히는 절망 속에서 살든지, 정치판을 바꾸는 것이다. 집권 세력이 믿는 것은 첫째 40% 내외라는 여론조사 기관의 지지율 숫자이고, 둘째 야권의 분열이다. 여론의 지지는 주로 코로나 방역에 기댄 국민의 안전 추구 심리와 퍼주기(포퓰리즘)를 통해서, 그리고 야권의 분열은 야권 지도층의 난립과 대립을 통해서다.

코로나는 내년 서울·부산 보궐선거, 후년 대통령 선거까지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숫자’는 얼마든지 춤출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는 권위-독재 체제에서 더 잘 관리되고 있다. 윤석열 검찰총장을 쫓아내려는 시도의 목적은 윤 총장을 정치권으로 몰아내 야권의 대권 구도를 난립으로 몰고 가는 데 있다고 본다. 윤 총장이 검찰을 떠나면 그날로 현 집권 세력의 칼날을 피할 길이 없다. 그렇다고 그가 곧바로 야권의 지배적 잠룡으로 직행하기에는 야권의 통로가 너무 폐쇄적이고 어지럽다. 그는 또다시 잠룡의 하나로 처질 것이고 그래서 단일화 구도는 흐려질 것이다.

역(逆)으로 말해서 야권이 문 정권을 이기는 길은 단일화에 있다. 단일화 못 하면, 안 하면 야권은 죽고 좌파 정치는 더욱 활개 칠 것이고 이 나라는 이대로 죽 간다. 국민은 야권에 ‘인물’이 없다고 한다. 한마디로 ‘깜’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야권의 누가 돼도 좌파의 어느 후보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있다. 인물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인물 타령은 결과적으로 여권의 야권 분열-난립 작전을 도와주는 꼴이다.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야권 단일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