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1.02.04 21:43
김명수 대법원장의 ‘임성근 판사 탄핵’ 발언이 담긴 작년 5월 면담 녹취록이 그 당사자인 임 판사에 의해 4일 공개되면서 ‘면담에서 탄핵 얘기는 없었다’는 김 대법원장의 공식 해명은 하루 만에 거짓말로 드러났다.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것이 본업인 법원의 수장으로서 김 대법원장 권위와 도덕성이 치명상을 입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일선 판사들 사이에선 “경악스럽다” “대법원장이 사법 독립 책무를 포기했다”는 말이 나왔다.
◇”사법 신뢰는 물론 국격까지 훼손”
김현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이날 본지 통화에서 “대법원장의 헌법상 책무는 사법부와 법관 독립 수호”라며 “작년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탄핵’을 언급하며 반려한 것은 김 대법원장의 정권 눈치 보기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의 거짓말은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키고 국격(國格)까지 훼손한 것”이라고 했다.
하창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도 “대법원장이라는 분이 여당에 법관을 탄핵할 여건을 만들어 주고, 이를 위해 사표를 반려하고 거짓말까지 한 것”이라며 “대한민국 사법부의 이런 모습이 부끄럽다”고 했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김 대법원장은 대법원장의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면담 발언은 헌법이 보장하는 법관 독립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대법원장의 헌법상 책무에 대한 관념 자체가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은 본지 통화에서 “임 부장 일은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고, 강일원 전 헌법재판관은 “참 가슴이 아프다”고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직 재판관은 “대법원장이 법관 탄핵에 사실상 동조하고, 국회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라며 “(임 부장판사가 아니라) 김 대법원장이 탄핵감”이라고 했다. 한 전직 법무부 장관은 “김 대법원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 더 버티면 우리나라 사법부에도 치욕”이라며 “공인(公人)도 잘못을 할 수 있지만 절대 거짓말은 하면 안 된다. 특히 대법원장은 이를 가장 철저하게 지켜야 할 공인이다”라고 했다.
◇클린턴·닉슨 탄핵 사유도 ‘거짓말’
김 대법원장의 ‘탄핵 발언 없었다’는 거짓말과 관련해 법원 안팎에선 미국 전직 대통령의 탄핵 사유가 거론되고 있다. 미국 42대 대통령인 빌 클린턴은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 등과의 성(性)추문으로 1998년 12월 하원에서 탄핵 소추안이 가결됐다. 그런데 미 하원이 클린턴의 탄핵 사유로 삼은 것은 성 추문이 아닌 위증과 사법 방해였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청문회와 법정 등에서 “르윈스키와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없다”고 거짓말(위증)을 했다는 것이었다.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이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사퇴한 것도 거짓말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닉슨 이 1972년 재선을 위해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가 있던 워싱턴의 워터게이트빌딩에 도청 장치를 설치하는 데 개입했다는 것이다. 1973년 7월 청문회에서 닉슨의 부보좌관은 닉슨이 도청 사건에 직접 개입한 사실을 폭로했다. 닉슨은 “나는 사기꾼이 아니다”라며 부인했지만, 1974년 8월 닉슨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사전에 알고 있었다는 내용의 녹음 테이프가 공개되며 거짓말로 드러났다. 결국 닉슨은 미국 의회가 탄핵소추안을 의결하기 전 자진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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