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제균 논설주간 입력 2021-01-25 03:00수정 2021-01-25 10:34
윤석열·최재형에 정권 차원 압박 뒤
“文정부 검찰총장” “정치 감사 아냐”
‘퇴임 후 안전’ 고려했단 분석도
단임 대통령에 ‘계산서’ 날아올 시간
불행한 역사, 반복 않도록 自重을…
박제균 논설주간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서 ‘입양아 바꾸기’ 발언이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대통령이 뭐 이렇다 할 악의가 있거나 비정해서 한 말이라고 보지 않는다. 정치인으로서, 특히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이 입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냥 진솔하게 사과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청와대 대변인을 내세워 어설픈 변명으로 주워 담으려 하고, 그것도 모자라 바로 다음 날 보건복지부까지 나서 ‘사전 위탁제 도입’ 운운하니까 많은 국민의 분노지수를 치솟게 한 것이다. 정부 부처가 대통령의 실언(失言)을 치다꺼리하는 곳인가.
하지만 정작 내가 놀란 발언은 따로 있었다.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저의 평가를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한 것. 바로 이 대목에서 2019년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지명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장장 1년 4개월간 문 정권이 펼친 ‘윤석열 찍어내기 대하드라마’를 생생하게 시청한 국민들은 뜨악해질 수밖에 없다.
‘집 지키라고 했더니 감히 살아 있는 권력을 문 검찰견’에 대한 이 정권의 찍어내기 드라마는 법원이 정직 2개월 징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신청을 인용하고서야 비로소 종영했다. 그 난장(亂場)을 벌인 정권의 최고책임자가 ‘그냥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란다.
당장 윤석열 찍어내기 선봉에 섰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여당 의원들, 홍위병 같은 공격을 자행했던 ‘문파’들부터 그 말에 동의할까. 더구나 지난해 연초부터 추 장관 임명을 강행해 윤석열을 식물총장으로 만든 뒤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면서도 절차적 정당성이라고는 없는 징계안을 즉각 재가해 사실상 찍어내기를 배후 연출한 대통령이 할 말은 아니다.
민주화 이후 역대 누구보다 강력한 제왕적 권력을 휘두른 문 대통령이 애초부터 ‘노(NO)’ 했다면 윤석열 축출 기도(企圖) 자체가 불가능했을 터. 그런 국가적 소모전을 조장해 놓고 이제 와서 “민주주의의 일반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이러니 임기 종료를 1년 3개월여 앞둔 대통령이 ‘퇴임 후 안전’을 고려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즉, 법이 정한 검찰총장 임기제를 부정한 윤석열 퇴진 압박은 자신과는 무관하다는 ‘기록’을 남겨 훗날 직권남용 등 법적 논란 소지에 대비하려 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감사원의 탈원전 정책 수립과정 추가 감사를 “정치적 목적의 감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 데 대해서도 비슷한 분석이 나온다. 이 정권 사람들이 최재형 감사원장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월성 원전 1호기 조기 폐쇄 결정 감사에 대해 전방위 압박을 가한 건 주지의 사실. 그것도 ‘다 밑에서 한 일’이라는 취지일 것이다.
아직 봄꿈에서 깨어나지도 않았는데, 계단 앞에 떨어진 오동잎이 벌써 가을의 소리를 낸다고 했다. 레임덕은 없을 것 같았던 문 대통령의 권력도 이제 손안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시간이 오고 있다. 여권 대선주자들이 국가 재정을 쌈짓돈인 양 돈 풀기 경쟁을 벌이고, 그렇게 말 잘 듣던 홍남기 경제부총리마저 “재정은 화수분이 아니다”라고 들이받으며 자신의 ‘레코드’를 남기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래도 당분간은 거대 여당의 친문 의원들이 ‘대통령 옹위’에 적극 나설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권의 미래권력이 구체화하기 전까지다. 그때가 되면 한번 권력의 맛을 본 ‘문재인 키즈’들마저 줄 대기에 나서고, 좀 더 시간이 지나면 금배지의 속성상 자신의 연임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다.
‘평생 친구’ 노무현이 간파한 대로 문재인은 정치에 잘 맞는 사람은 아니다. 기자회견 기피와 입양아 실언에서도 드러나듯, 말의 경중(輕重)을 따져 구사를 잘하는 편도 아니고 공감능력도 떨어진다고 본다. 특유의 유체이탈 화법이나 남 얘기를 듣기는 하되 입력은 잘 안 되는 스타일도 공감능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그런 불통(不通)과 자기편에 갇힌 ‘팬덤 통치’가 이 나라를 한 번도 경험 못 한 여기까지 끌고 온 힘(?)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단임 대통령에게 숙명적인 계산서가 날아올 시간이다. 그런데도 실정(失政)의 대못을 박기 위해 무리수를 두거나, 자칫 차기 대권 구도 개입의 욕심에 흔들린다면 불행한 대통령의 역사는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다. 문 대통령에게도 겨울이 오고 있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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