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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이기홍 칼럼]집수리 맡겼더니 기둥 다 부수려 드나

이기홍 대기자 입력 2021-01-22 03:00수정 2021-01-22 05:55

 

한미동맹·檢개혁·원전·부동산 등 주요 제도
문제 보완하는 척하다 슬금슬금 골간 바꾸려 해
국민은 文정권에 나라 재건축 위임한 적 없다

이기홍 대기자

사람의 지문처럼 잠수함은 소음과 진동이 만들어내는 저마다의 음문(音紋)이 있다. 음문은 잠수함의 생명 정보며, 안보 핵심 기밀이다. 그래서 잠수함 훈련은 핵심 동맹국들 사이에서만 이뤄진다.

13일부터 1주일간 괌 인근 해상에서 전개된 ‘시드래건(Sea Dragon)’도 그런 훈련이다. 로스앤젤레스급 미국 핵잠함 시카고호가 가상 적국 잠함으로 변신해 바닷속을 돌아다니고, 참가국들은 해상초계기 등을 동원해 추적한다. 미국 호주 일본 인도 캐나다가 참가했다. 한국은 불참했는데, 불참 사유는 코로나 상황이었다.

‘공교롭게’ 김정은은 14일 핵미사일 장착 전략핵추진잠수함 개발을 과시했고, 문재인 대통령은 18일 신년회견에서 한미훈련을 북한과 협의하겠다고 했다.

물론 미국과의 훈련 불참 한두 건이 우리 안보를 좌우할 일은 아니다. 70년 넘게 함께 쌓아온 한미동맹이 벽돌 몇 개 뺀다고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문제는 이 정권 들어 대한민국을 이루는 기둥 곳곳에서 이런 벽돌 빼기가 반복적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다. 일관된 패턴이 관찰된다. 처음에는 부분 수리만 하는 척한다. 과격한 전면 철거·재건축 의도를 드러내면 수리업체 재입찰 때 탈락은 물론이고, 당장의 작업도 거센 반발에 부딪힐 걸 알기에 슬금슬금 밑돌부터 뺀다.

 

검찰개혁은 수사권 조정 수준을 넘어 이젠 수사권 전면 폐지까지 밀어붙일 태세다. 원전 정책은 의존도를 줄이고 안전성을 강화하는 차원을 넘어 돌이키기 힘든 탈원전, 원전산업 고사(枯死) 모드로 접어들었다.

부동산 제도도 종국엔 근간을 바꾸려 할 것이다. 이미 추미애 당대표 시절(2017년 9월) “농지개혁에 버금가는 지대개혁”을 거론했고, 총선 직후 민주당에선 토지공개념 개헌론이 제기됐다. 당분간은 보유세·거래세를 극한까지 강화하는 차원에 머물다 정권 재창출에 성공하면 ‘부동산 민주화·평등화’를 완성하려 들 공산이 크다.

기둥들을 부수는 과정에서 탈법과 절차 위반, 건설현장 하도급 비리를 닮은 구린내 나는 행태들이 잇따른다. 이걸 검찰과 감사원이 문제 삼으니 “집 지키라 했더니 감히 주인을”이라며 눈을 부라린다. 워치독의 주인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기본 상식도 망각했다.

국민이 기둥 철거를 위임한 적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되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는 게 대선 공약 논리다. 그러나 388쪽에 달하는 문재인 후보 공약 어디에도 지금 정권의 행태를 정당화시켜 줄 내용은 없다.

예를 들어 공약집의 ‘권력기관 개혁’ 항목 주제는 ‘권력 눈치 안 보는 성역 없는 수사기관 만들기’다. 공수처 설치의 취지도 ‘검찰의 권력 눈치 보기 수사 차단’이라 되어 있다. 검찰총장 무력화나 수사권 전면 폐지는 어디에도 없다.

더더구나 압도적 다수(super majority)의 지지를 받은 것처럼 밀어붙일 처지는 못 된다. 문 대통령의 대선 득표율은 41%, 전체 유권자로 환산하면 31%였다.

논리가 막히면 촛불정신을 들먹이는데, 촛불집회의 주역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등 대한민국의 근간 가치를 지지하는 대다수 시민이었다. 대한민국호(號)의 근본 항로를 바꾸자는 요구는 집회 주최단체들을 제외한 일반 참가자 가운데는 극소수에 불과했다.

하버드대 정치학과 스티븐 레비츠키 교수 연구에 따르면 세계 곳곳 ‘선출된 독재자’의 전형적인 수법은 심판 매수와 운동장 기울이기인데, 이 모든 게 살금살금 이루어진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18일 회견에서도 온건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추미애 장관이 야기한 그 숱한 분란과는 격리된 세계에서 살다 온 듯, 지난해 검찰 학살 인사는 추 장관이 대통령 결재 없이 자행한 것인 듯 행동했다.

문 대통령은 한미동맹을 중시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미동맹이 남북관계와 상충할 경우엔 동맹의 밑돌을 빼왔다. 정의용 외교장관 기용을 통해 여전히 정책기조를 바꿀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국민 다수를 향해서는 온건한 말로 안심시키고, 동시에 지지자들을 향해서는 ‘내 입이 아니라 내 행동을 보라’고 메시지를 보내는 셈이다.

집권세력은 새로 짓고 싶은 건물의 조감도를 제시한 적이 없다. 다만 명확히 드러난 공사 지침은 있다. 그것은 철저한 피아 구분이다. 우리 편은 극도의 내재적 관점으로 이해해준다. 김정은 김여정이 어떤 횡포를 부려도, 조국 가족의 어떤 비리가 드러나도 포용되고 이해된다. 반면 4대강 보 해체 결정에서 드러나듯 적의 생산물은 집요하게 초토화시킨다.

 

그들이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정의와 역사의 진보, 통일’을 향해 어깨 걸고 한마음으로 가는 사회일 것이다. 대의를 위한 대장정에 어떻게 반대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니 검찰 감사원 언론의 견제와 문제 제기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수구세력의 반(反)개혁 음모 이외로는 해석이 안 되는 것이다.

윤석열·최재형과 전광훈을 같은 냄새로 분류하는 후각 상실증, 21세기판 이념 색맹증도 그런 뇌구조의 결과물이다. 후각도 시각도 단선적이니 멘털과 신념도 쉽게 담금질된다. 그러니 언행 불일치를 밥 먹듯 하고, 집수리 한다고 들어와 기둥을 부수면서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아니겠는가.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