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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중도 성향도 클릭 몇번하다보면, 어느새 좌우 극단 지지자로

[2021 신년특집 - 알고리즘이 당신을 지배한다] [1]

기획취재팀

김지섭 기자

안중현 기자

오로라 기자

박상현 기자

김윤주 기자

입력 2021.01.01 03:37

 

 

 

직장인 박모(53)씨는 지난해 서울 서초동에서 열린 ‘조국 수호’ 집회에 참가했다. 박씨는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모두 문재인 후보에게 투표하는 등 꾸준히 민주당을 지지해왔다. 하지만 정치인의 비위 등에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비판했고,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에게 표를 주지 않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박씨는 어느 순간부터 “저 사람이 우리 편인가”만 따지게 됐다고 했다.. 박씨는 “검찰이 작정하고 달려들면 먼지 하나 안 나올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조국 사태는 검찰 개혁에 반대하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트집 잡기”라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36)씨는 지난해 4월 총선 이후 부정선거 관련 인터넷 커뮤니티에 가입해 활동 중이다. 이씨는 선거에서 주로 보수 정당 후보를 뽑았지만, 지난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촛불 집회’에 참석한 적도 있다. 그는 “내가 사회를 보는 시각이 크게 치우쳐 있진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총선 이후 여권 인사들에 대한 혐오감이 커졌다”고 했다. 그는 “최악의 국정 운영에도 총선에서 그렇게 많은 표를 받은 것은 부정선거 말고는 도저히 설명이 안 된다”고 말했다.

미국 수도 워싱턴DC의 중심가에 있는 프리덤 플라자에서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성조기와 각종 깃발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AP연합뉴스

◇두 동강 난 스마트폰 속 세계

박씨와 이씨가 수년에 걸쳐 정치 스펙트럼상 좌우 양극단에 서게 되는 데까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의 동의를 얻어 그들이 하루 평균 3~4시간 이상 쓴다는 스마트폰 안을 들여다봤다. 소셜미디어 앱에 들어가보니 두 사람이 같은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이 맞는지 싶을 만큼 정반대의 세상이 펼쳐졌다.

박씨의 유튜브 화면은 진보 성향 방송인이나 정치인, 유튜버가 만든 영상으로 도배돼 있었다. 박씨가 지난해 11월 1일부터 12월 18일까지 시청한 전체 64개의 정치·사회 분야 영상 중 친여권 성향 채널이 37개로 전체의 58%를 차지했으며, 반대 성향 채널은 하나도 없었다. 페이스북에는 여권 정치인과 친여권 지식인들의 게시물이 가득했다.

알고리즘으로 두 동강 난 스마트폰 속 세계 / 그래픽=김하경

반면, 이씨의 유튜브, 페이스북에서는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보수 성향 인사들의 콘텐츠가 줄줄이 등장했다. 이씨 역시 같은 기간 시청한 유튜브 정치·사회 콘텐츠 목록을 확인해보니 전체의 64%(119개 중 76개)가 반정부·여권 성향 콘텐츠들이었다. 반대 성향 채널은 전혀 없었다.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자신의 성향을 조금이라도 드러낸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정치적인 편향성이 강하지 않은 이용자에게도 ‘진영’을 선택해 영상 등을 편식하게 만든다. 이런 과정을 거쳐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를 뜻하는 ‘대깨문’, 강성 우파를 의미하는 ‘태극기 부대’는 더욱 더 강화된다.

 

김모(36)씨는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여당 의원에 공격당하는 내용 위주로 편집된 유튜브 영상을 몇 개 시청했다. 그런자 김씨의 유튜브 계정에 진보 성향 유튜버들이 만든 콘텐츠들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여당 의원이 윤 총장에게 호통치는 영상을 본 김씨를 친정부 성향의 사람으로 판정하고 유사한 콘텐츠를 제공한 것이다. 김씨는 “선거 때마다 지지 정당이 바뀔 만큼 나는 중립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영상 클릭 몇 번 했다가 한 순간에 ‘대깨문’ 콘텐츠 홍수에 시달렸다”고 했다.

◇양극단만 남기는 알고리즘…사회 갈등 심화

소셜미디어의 알고리즘은 특정 성향을 극단화하기 때문에 우리 사회 ‘허리’에 해당하는 중도층을 얇아지게 만든다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 정치·사회 이슈에 대한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는 중도 성향의 사람들을 더욱 더 해당 이슈에서 멀어지게 함으로써 양극단의 목소리만 남게 하는 것이다. 음악, 스포츠 등의 콘텐츠를 자주 보면 알고리즘은 그 분야에만 빠지게 만든다. 전창배 한국인공지능윤리협회 이사장은 “알고리즘은 이미 본 콘텐츠를 기반으로 영상을 추천하기 때문에 ‘편향된 데이터’만 지속적으로 제공된다”며 “알고리즘이 이용자가 좋아하는 콘텐츠를 계속 추천하고 보여주는 방식으로 특정 관심사 외에는 관심도, 정보도 없게 만들면서 개인들을 고립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알고리즘이 유발하는 사회 갈등과 대립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에서는 공화당 지지자 및 극우성향인 사람들이 코로나 사태로 하루에만 수십만명이 사망하는 와중에도 ‘노마스크’ 시위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 사태가 사회적 위기감을 고조시켜 정치적 이득을 보려는 집단이 만들어낸 사기극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지난해 9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선 트럼프·바이든 각각의 지지자 77%가 “반대편 후보를 지지하는 친구가 주변에 없다”고 답했다.

한국 사회 갈등의 골도 깊어지고 있다. 고려대 동아시아연구원 등의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계 정당 지지자와 국민의힘 계열 정당 지지자의 이념 간격의 평균 거리는 지난 15년간 3.2배나 넓어졌다. 0점(매우 진보)에서 10점(매우 보수)을 기준으로 두 정당 지지자 간 평균 거리를 재봤더니 2005년에는 0.84였는데 2010년과 2015년에는 각각 0.91, 1.73으로 폭이 넓어지다가 지난해에는 2.71까지 벌어졌다. 조영달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야 갈등과 법치주의의 훼손, 적대적 대결 정치 속에서 민주주의는 퇴행하고 국민들의 극단적 사회 갈등과 이념 대립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