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창균·정치부 차장
통쾌하고 감격스러웠던 베이징올림픽 필름을 되돌려보니 왠지 찜찜한 몇 컷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8월 8일 개막식에 참석했던 여권(與圈) 관계자는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한국 선수단이 입장할 때 관중석이 갑자기 싸늘해지더라"는 것이다.
개막식 다음날부터 이어진 한국의 금메달 행진은 엿새 만인 8월 14일 중단됐다. 양궁 여자 개인전 예선서 1, 2, 3위를 했던 한국 선수들은 중국 선수 한 명에게 준준결승, 준결승, 결승에서 차례로 무너졌다. '우리 선수들이 시위를 당길 때 호루라기를 불고 페트병을 두들겨댄 중국 응원단 탓'이라고 상당수 국민들은 믿고 싶어했다. 성난 네티즌들은 국내 TV 프로그램에서 활동 중인 중국인 홈페이지에까지 쳐들어가 비난을 퍼부었다.
여자 배드민턴 복식팀은 준결승에서 한 게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서비스 폴트로 4점이나 먹으며 고전했다. 악착같이 서비스 폴트를 잡아낸 건 중국인 부심(副審)이었다. 복식팀 이경원 선수는 "한두 개면 모르겠는데, 완전히 작정하고 들어온 것 같더라"고 했다.
중국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당예서 선수는 여자 탁구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따냈다. 은메달을 차지한 싱가포르 팀을 비롯해 미국, 호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의 주전 선수들도 중국에서 올림픽 출전권을 따낼 수 없어 귀화한 중국계 선수들이다. 그런데도 유독 당예서 선수만 중국인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비난을 받으며 마음 고생을 했다.
이런 일들을 하나하나 우리 관점에서 따라가다 보면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적대감은 쌍방향으로 흐르는 법이다. 또 우리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없지 않다. 지난 5월 쓰촨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 몇몇 '생각 없는' 국내 네티즌들이 '티베트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중국이 천벌을 받은 것'이라는 악플을 올렸다. 중국 네티즌들이 이를 퍼 나르면서 한국에 대한 반감이 급속도로 확산됐다고 한다. 올림픽 직전 한국의 한 방송사는 개막식 리허설을 사전(事前) 보도하는 결례를 저질렀다. 100년 동안 올림픽 개최 꿈을 키워 왔다는 중국 국민들은 "한국이 우리 잔치에 재를 뿌렸다"고 격분했다.
한·중·일 동북아 3개국은 20년씩의 시차를 두고 기적적인 경제 발전을 이뤘다. 1964년 도쿄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은 세 나라의 성공의 역사가 국제 무대에 등록된 시점이다. 세 나라의 에너지가 한데 합쳐질 수만 있다면 동북아는 전 세계의 번영을 견인하는 약속의 땅이 될 것이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일본에 대한 불신은 짧은 기간 안에 치유를 기대할 수 없을 정도로 골이 깊다. 이제는 한국과 중국 국민들 사이에서도 새로운 증오가 싹트고 자라나는 중이다. 한국 국민들은 "중국이 대국(大國) 의식을 앞세워 함부로 행동한다"고 느끼는 반면 중국 국민들은 "한국이 경제 발전 좀 빨리 했다고…"라고 불만을 표시한다. 서로 상대로부터 무시당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에 빠져 있다. 안보를 중심으로 뭉쳤던 한·미·일 삼각 공조체제 대신 편협한 민족주의를 코드로 하는 한·중·일 삼각 안티체제가 자리잡게 될지도 모른다.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올림픽 폐막 바로 다음날 한국을 찾았고, 이명박 대통령은 후 주석을 미 대통령에 준해 극진히 맞았다. 두 사람은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확인하고 34개 분야 협력 방안을 담은 공동 성명을 채택했다. 그러나 거창한 수사(레토릭)보다 한·중 정상이 먼저 챙겨야 할 일이 있다. 베이징올림픽 경기장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양국 국민 간 불편한 감정의 뿌리를 찾아내는 작업이다. 어둠 속에서 은밀히 힘을 길러온 중국이 평화롭게 국제 무대에 우뚝 서기 위해서도, 중진국의 함정에 빠져 있는 한국이 선진국의 문턱을 넘기 위해서도 두 나라는 서로를 미워할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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