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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소수한계 극복 못한 권영길·이인제·문국현 후보

소수한계 극복 못한 권영길·이인제·문국현 후보
연합뉴스
 
민주노동당 권영길, 민주당 이인제,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는 19일 ‘대선 완주’라는 의미에도 불구하고 소수정당 후보로서의 한계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대권 3수(修)에 나선 권 후보, 재도전에 나선 이 후보는 각각 진보와 중도개혁의 깃발을 내걸었으나 거대정당 후보들의 경쟁에 가려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고, 문 후보는 참신하고 깨끗한 이미지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이끌어냈으나 세부족을 절감해야 했다.

권영길 = 세 번째 대권도전에 나선 권 후보는 이번에도 대권의 높은 벽을 넘지 못했다.

권 후보는 지난 9월 민노당 경선에서 심상정 의원과 결선투표까지 가는 접전 끝에 세 번째 대권도전의 길을 열었다.

여론의 관심을 끌었던 경선의 후광효과로 권 후보 지지율은 경선 직후 5%대를 기록하며 선전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그러나 선거전략 부재 속에 지지율은 대선 직전까지 내리막길을 걸어 급기야 3% 안팎의 부진 끝에 선거를 마쳤다.

권 후보는 선거 막판 “내년 총선을 위해서라도 민노당에 ‘종자돈’을 달라. 미래를 위해 한 표를 달라”고 호소하며 전통적인 민노당 지지층을 결집시키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또 진보적 경제 정책을 발표하는 등 정책 이슈를 통해 차별화를 꾀하려 했으나 “어떤 것도 BBK 주가조작 사건의 논란을 넘어서지 못했다”며 사실상 한계를 인정했다.

권 후보는 이날 주소지인 창원에서 투표를 하고, 태안 기름유출사고 현장을 찾아 자원봉사활동을 펼친 뒤 문래동 당사 상황실에서 묵묵히 개표방송을 지켜보며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인제 = 97년 대선 3위, 2002년 민주당 후보경선 탈락에 이어 두번째 대권본선 도전에 나선 이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도 쓴 잔을 마시게 됐다.

이 후보는 지난 5월 민주당에 복당한 뒤 두 차례 패배의 교훈을 바탕으로 절치부심해 대선후보 티켓을 거머쥐었다. 경선 과정에서는 특유의 부지런함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강력한 경쟁자였던 조순형 의원을 물리치는 저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대선 레이스가 시작되면서 이 후보는 자신의 표현대로 ‘외롭고 힘겨운 투쟁’을 해야만 했다.

대통합민주신당과의 통합 및 후보단일화 합의, 파기 논란을 거치면서 이 후보의 지지율은 1%대 안팎으로 추락했고, 이 과정에서 일부 의원 및 원외위원장들은 신당, 한나라당, 무소속 이회창 캠프로 흩어졌다.

이에 그는 “단 한표가 나와도 끝까지 국민을 향해 달려가겠다”며 독자 대선완주 의지를 밝혔지만 선거운동 마지막날까지 단일화 및 후보사퇴 압력에 시달려야 했다.

이 후보측은 “선거혁명을 통해 신당과 한나라당이 아닌 대안후보로 이인제 후보를 선택해줄 것을 호소했지만 민심을 얻지 못했다”며 “앞으로 민주당 재건을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국현 = 대선을 불과 4개월 앞두고 ‘필마단기’로 도전했던 문 후보는 정치초년생 답지 않게 선전했으나 당선권에 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문 후보는 1995년부터 12년간 유한킴벌리 대표이사로 재직하면서 사람중심, 반부패 윤리경영 등 혁신적 경영 마인드를 선보였고, ‘우리강산 푸르게 푸르게’ 등 시민운동과 적극적인 기부 활동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런 문 후보의 저력 때문에 범여권 안팎에서는 그를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잠재력 있는 대항마로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대선 레이스에 들어선 뒤 문 후보는 범여권과 재야 시민사회의 끊임없는 후보 단일화 압박에 저항하며 갈등을 빚었고 단일화 무산논란, 개혁진영 대선패배의 책임을 두고 신당 정동영 후보와 대립각을 세우는 처지가 됐다.

하지만 문 후보는 이번 대선에서 청와대 입성에는 실패했지만 내년 총선에서 창조한국당을 원내 10석대 정당으로 진출시키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는다. 문 후보는 수도권 20-30대의 지지를 바탕으로 내년 총선에서 정책중심 정당을 표방하며 새로운 돌풍을 시도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입력 : 2007.12.19 2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