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좀 '거시기'하다. 그래도 2007년 대선기상도를 가늠해볼 틀거리로는 꽤 쓸만해 차용했다.
1997년의 김대중 세력은 외환위기라는 국가부도상황에서 집권했다. 물론 주요 승인은 DJP연합과 이인제효과라 하겠지만 어쨋든 시대정신으로만 보면 수구적인 한나라당 세력보다 김대중세력이 더 믿음직했던 게 당시 여론이 아닌가 싶다.
2002년의 노무현 세력은 사실 세력이랄 것도 없다. 김대중 세력에 얹혀 권력을 잡았으니 노무현 독자세력이라고 말할 그 무엇도 없다. 그래서 나중에 민주당 분당이후 민주당으로부터 남의 둥지를 빌려 알을 낳는 '뻐꾸기'로 공박당하기도 했다.
그런데 세력이 없는 노무현이 후에 세력화할 수 있었던 것은 이른 바 시대정신 때문이었다. 특히 정치사회적 권위주의인 지역주의극복을 주창하고 실천해왔기 때문이다. 3김에 속했지만 3김 지역주의와 권위주의에 저항한 정치인이 노무현이었기에 새로운 시대정신의 적임자로 선택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정치사회적 지역주의 극복과 탈권위주의를 동시에 추진했다. 여러가지 한계와 문제로 비판받고 있긴 하지만 정부조직을 시스템화하고 시민사회목소리를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도록 혁신담당관실 신설과 같은 정부조직체계를 구축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현직 관료들의 정무직 장차관 기용과 같은 관료적 권위주의를 더욱 강화시킨 것은 '과'중의 '과'다. 효율성이란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한 것이다.
아무튼 그렇게 한 4년을 흐르다보니 이제는 사회경제적 요구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전면화된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고용없는 성장과 일자리 축소, 그리고 비정규직 양산 등으로 중산층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전임 김대중 정부의 외환위기 타개책으로 인한 것이라곤 하지만 그런 설겆이를 제대로 못한 것도 엄연히 '과'에 속한다. 전임 정부의 설겆이까지 도맡겠다고 집권한 마당에 과거 정부 탓만하는 것이 오히려 지지율 하락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문제는 2007년이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공을 발전시키고 과를 극복할 창조적인 시대정신이 무엇이냐가 이번 대선에 관건이 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시대정신은 또 하나의 정치세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이명박 후보는 꽤 운이 좋은 후보다. 경제적 양극화 극복을 염원하는 여론은 엉뚱하게도 '경제성장'과 '추진력'을 사회경제적 열쇳말(키워드)로 만들었고 여기에 이명박후보가 적임자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온갖 도덕성과 자질시비에도 불구하고 지지도가 떨어지지 않는 이명박현상의 본질이다. 그리고 이명박 세력이 매우 폭넓게 만들어지고 있다.
반대로 반 이명박 전선에는 이렇다할 주자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 범여권이라고 말하는 전통적인 민주화세력진영엔 '훈장'만 나부끼고 세력은 조각 났다. 새로운 시대정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말기의 사회투자국가론을 주창하는 이는 있어도 개혁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 '실용주의' 세력의 담론이기에 신빙성도 떨어진다. 이것이 정동영후보의 근원적 약점이다.
그러다보니 의미있는 선거구도가 만들어지지 않는다. 구도를 억지로 만들려다보니 사람들을 동원하고 덩치를 키우는 대통합과 단일화가 마치 시대정신인양 호들갑을 떨고 있다. 그러나 현명한 여론은 '웃기지 마라'다. 마치 수익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은 재벌의 몸집키우기가 외환위기로 연결되었듯이 '대통합과 단일화'는 시대정신이란 알멩이를 빼고 몸집만 키우고 있는데 그게 한계에 다다른 것이 정동영후보의 지지율 정체의 본질이다.
전당대회 컨벤션효과를 지지율 상승으로 연결시키려고 그간의 모든 경쟁자, 심지어 정적이랄 수도 있는 유시민 의원까지 포괄한 선거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아직도 감동은 오리무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문국현이란 후보가 나타났다. 물론 문국현 후보역시 지지율은 답보상태다. 그러나 인지도 95% 후보의 지지율답보와 인지도 20%인 문국현 후보의 답보상태는 질적으로 다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지지도가 높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당연히 지지도가 낮을 수 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문국현 후보가 어떤 시대정신을 말하고 추진해왔느냐이다. 문국현 후보의 담론은 사실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요즘 유행하는 북유럽형 사회투자국가론이 그의 정책노선의 핵심이다.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지식노동자를 육성하여 일자리문제와 성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자는 모델이다. 스웨덴이 그렇고 아일랜드가 그러하며 덴마크, 네덜란드 모델이 다 그 축에 속하는 나라들이다.
한나라당 정권이 저질러 놓은 국가부도사태를 김대중,노무현정부가 설겆이 해왔지만 중산층 붕괴를 막아내지 못했다. 그리고 중산층 붕괴이후 정확한 시대정신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아니라 '균형성장'이었다. 그래서 2007년의 대선 시대정신은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한 균형성장과 중산층복원, 그리고 이를 통해 세계화에 성공적으로 적응하여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다.
바로 이런 시점에 문국현 후보가 나타났다.
그의 사람입국론은 그저 듣기 좋은 정치슬로건이 아니다. 개발독재시대의 요소투입형 생산체제를 기술력 중심의 고부가가치 생산체제로 가자는 것이다. 생산에 투입되는 자본과 노동자 단위를 많이 투입할수록 더 많은 이윤을 만들어내는 요소투입형 산업체제는 저임금산업구조를 갖는 후진국형 생산체제고 우리도 이를 경유해왔다.
그러나 지금은 저임금으로 산업을 지탱할수 있는 한국경제가 아니다. 우리가 추격해가야 할 추격모델이 더이상 존재하지 않고 오히려 후진국이 우리를 추격해오고 있는 실정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1인당 GDP를 올려야 하고 이를 위해 기술있는 노동자들이 많이 욱성되어야 한다. 국가와 기업의 평생교육복지시스템으로 지식노동자를 대량 육성하자는 것이 문국현의 사람입국론이다. 그의 사람입국론은 개발독재시대의 요소투입형(자본+노동)산업체제가 아니라 '자본+노동+지식기반+인적자원'이 결합해야 고부가가치 산업경제로 갈 수 있다는 것이며 여기서 핵심적 요소가 '사람에 대한 투자'라는 것이다.
내가 문국현 패러다임을 높게 평가하고 후한 점수를 주는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다. 그가 깨끗한 부, 즉 청부정신을 보여주기도 하고 일찌감치 생태환경에 눈뜬 선구적 안목, 기탄없는 기부 등이 돋보이긴 했지만 그것이 그의 강점이 아니라 그의 패러다임이 한국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입국론은 세계화된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하면서 동시에 사람에 대한 투자, 즉 사회투자를 통해 '사회성장'이 가능한 유일한 모델이다.
경부운하로 상징되는 건설입국론의 이명박 후보 모델이 성공한다면 잘해야 영국과 미국정도다. 이 나라들이 가난한 나라라고 말은 못하지만 극심한 빈부격차는 세계에서 으뜸가는 나라다. 이런 나라를 우리의 미래 모델국가로 설정하는 것은 일부 부자들의 논리이지 서민들의 논리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2007년 대선의 새로운 시대정신은 기존의 권위주의 타파나 절차민주주의의 완성과 같은 구시대 패러다임 안에서의 시대정신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교체를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문국현의 정책노선이 '말은 좋지만 그게 될까?'라는 의문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솔깃하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발견과 같은 가설과 회의론의 교착현상과 비슷하다. 지구가 둥글다는 가설에 따라 황금이 많이 나는 인도를 발견하려 나섰던 콜럼버스 일행은 지구가 네모난 형체여서 바다 끝까지 가면 모두 추락해 죽을 것이란 당시 가톨릭이 만든 '상식'을 거부하고 '죽더라도 가보자'는 개척정신으로 오늘의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다(물론 백인들 입장에서 발견이지 원주민 입장에선 침략자에 불과하다)
훗날 콜럼버스는 사람들이 아메리카대륙 발견을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라며 그 의미를 깍아내리고 비아냥 댔지만 그는 '콜럼버스의 달걀'로 사람들을 무안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누구나 아는 일이라도 처음 알아낸 이의 개척과 창조정신을 인류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누구나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에 의해 인류역사는 이어져왔다.
문국현 후보가 자신의 패러다임을 이번 대선에서 확립할지는 두고봐야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문국현 후보 주위에 몰려들고 있는 사람들과 세력이 단지 문국현 후보가 신선한 신진정치인이라는 점 때문이 아니라 그의 패러다임이라면 당장의 성패와 관계없이 한번 도전해볼만한 가치가 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역사적 당위성을 가지고 있는 세력만큼 무서운 세력은 없다. 이런 세력은 항상 역사에서 선구적 시대정신을 주창하고 언젠간 반드시 승리해왔으므로 충분히 투자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세력이다. 그리고 그 세력화의 첫 발걸음으로 오늘 중앙당 창당대회를 한다고 하니 희망을 잃은 사람들은 한번쯤 눈여겨 볼 필요가 있겠다.
설령 문국현 진영을 지지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정책노선경쟁을 치열하게 시도하는 정치세력에게 눈길 한번 주는 것은 값싸고 질좋은 정치상품을 구입하는 정치소비자(유권자)의 현명한 처신이기도 하다. 경쟁력있는 가게 물건을 한번 더 쳐다보면 그 옆 가게 주인이 소비자에게 좀 더 신경쓸 것은 당연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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