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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문창극칼럼] 보이지 않는 자본

[문창극칼럼] 보이지 않는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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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같은 때에 글을 쓴다는 것은 맥 빠지는 일이다. 법과 원칙, 도덕을 내세우던 사람이 돌변하여 그것을 깨려고 한다. 욕망의 덩어리들이 싸우는 권력의 검은 바다에 한 줌의 글을 쏟아 넣은들 무슨 변화가 있겠는가. 욕망의 회오리가 몰아치는 어두운 골짜기에서 깜빡거리는 촛불을 들고 뭘 어쩌자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야 할 사람은 써야 한다.

모두가 잘사는 행복한 나라를 만드는 것은 우리의 꿈이다. 선거는 그런 나라를 누가 빨리, 확실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느냐를 놓고 대결하는 것이다. ‘줄.푸.세’니, ‘747’이니 하는 것은 목표다. 7% 성장, 4만 달러 소득, 세계 7위 국가를 만들면 얼마나 좋겠나. 그러나 무슨 방법으로 만들 것이냐고 묻는다면 막연해진다. “나에게 맡겨 달라” “기업 우선이다”는 게 고작 답이다. 그나마 이제는 이런 목표조차 관심이 없다. 누가 누구를 따라잡고, 어느 후보가 낙마하고…. 경마 구경만 하는 이런 선거판은 나라 발전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얼마 전 일류국가가 된다는 것은 일등칸 비행기나 기차를 타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라가 일등국가가 되면 국민 모두는 1등 승객이 된다. 나라가 3류이면 3등칸 탄 것과 같다. 밀물로 수면이 높아지면 모든 배가 떠오르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래서 일류국가를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똑같은 일을 하고도 미국에서는 멕시코에 비해 다섯 배의 임금을 받는다. 왜 그럴까.

월드뱅크가 이 문제에 대해 “국부(國富)는 어디에 있나(Where Is The Wealth Of Nations)”라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그 이유를 국부에서 찾았다. 미국이 멕시코보다 부자나라이기 때문에 이미 쌓여 있는 부(富) 때문에 임금을 높이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부는 곧 자본이다. 자본은 생산성을 높여 주기 때문에 같은 노력을 해도 생산성이 높은 만큼 임금을 더 받는다는 것이다. 이 보고서의 탁월함은 기존에 우리가 알던 ‘자본’과는 전혀 새로운 접근을 한 데 있다. 자본에는 국토·석유·천연가스 등 ‘자연자본’과 기계와 장비, 사회간접자본 등 ‘돈으로 만들어 낸 자본’, 그리고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자본’ 이렇게 세 종류가 있다. 그중에서 선진국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보이지 않는 자본’이다. 선진국의 경우 국부를 만들어 내는 데 ‘자연자본’은 기껏 1~3%, 도로·항만·기계 등 ‘만들어 낸 자본’은 17%, 나머지 80%는 ‘보이지 않는 자본’이 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 ‘보이지 않는 자본’은 바로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 법치를 포함한 효율적인 사법제도, 분명한 사유재산권, 효율적인 정부, 투명한 지배구조 등이다. 이런 가치들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지만 생산성을 높여 국부를 만들어 낸다. 석유가 아무리 많이 나와도, 다이아몬드 광산이 아무리 커도, 시골 구석까지 도로가 포장되고 대운하를 만든다 해도 이 ‘보이지 않는 자본’이 없다면 결코 선진국에 진입할 수 없다. 월드 뱅크는 이를 21세기 국부라고 말했다.

빠른 시간 안에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하면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로서는 21세기형 국부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19, 20세기형 ‘보이는 것’에만 머물러 있다. 이 정부의 혁신도시나 이명박 후보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은 모두 그런 것이다. 선진국 진입에 가장 중요한 ‘보이지 않는 자본’에 대한 논의는 외면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나마 쌓아 왔던 이 ‘보이지 않는 자본’마저 대통령선거를 할 때마다 훼손되고 있다. 공정한 경쟁은 법치의 근간이다. 선거에서 게임의 룰조차 못 지키는데 무슨 법치가 나올 수 있는가. 공교롭게도 법치를 앞장서 허무는 사람들은 지금까지 모두 법관 출신들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헌법을 허물고, 이인제는 경선에 불복하여 탈당하더니 그의 뒤를 따라 이회창은 공정한 경쟁룰을 깨려 하고 있다. 법 엘리트들이 앞장서 법치를 우습게 여기는 나라에서 누구에게 법을 지키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런 나라에서 어떻게 ‘보이지 않는 자본’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이회창의 방황을 보면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문창극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