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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 반드시 닥칠 북한 급변 사태에 총력으로 대비하라

[사설] 반드시 닥칠 북한 급변 사태에 총력으로 대비하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9월 9일 정권 수립 6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으면서 국제사회가 그의 신변 이상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사라진 것은 8월 14일이었다. 국가정보원은 국회에 "김 위원장이 뇌출혈 또는 뇌일혈을 일으켰으나 회복 가능하고 관리 가능한 상태"라고 보고했다.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김 위원장에게)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부인했다.

김 위원장은 1998년 정권 수립 50주년과 2003년 55주년 북한군 열병식에 참석했었다. 북한은 5년 주기로 오는 이른바 '꺾어지는 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김 위원장의 신변에 문제가 없다면 이번 60주년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김 위원장은 2006년 중국 베이징에서 심장병과 당뇨병 검진을 받았고, 작년 5월에는 독일 의사들로부터 심장 관상동맥 우회 수술을 받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올해 그의 나이가 66세다. 이번에 김 위원장이 다시 일어난다고 해도 앞으로 10년 후, 아무리 길게 보아도 20년 후까지 그가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을 가능성은 없다.

그의 건강상 문제가 크든 작든 김 위원장도 후계 문제를 더 이상 미뤄놓고만 있을 수는 없게 됐다. 후계자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고, 사전 정비 작업도 없는 상태에서 후계 문제가 물 위로 올라오면 북한 내에서도 권력 투쟁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후계자로 김정일의 세 아들 중 한 명이 옹립되더라도 결국은 군부가 막후에서 실권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어떤 길을 밟게 되든 잠정적으로 북한의 불확실성은 증대되고, 이와 맞물려 한반도 전체의 불확실성도 커질 수밖에 없다.

북한은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내려오는 유일(唯一) 왕조의 핏줄에 의한 정통성으로 떠받쳐진 나라다. 김일성 체제와 김정일 체제의 상이점(相異點)이라면 김일성이 가지고 있던 권력의 카리스마가 아들 김정일에겐 결여된 그 만큼 폭압적 요소가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런 김정일이 사라질 경우 체제 전체가 같이 무너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 경우 핵 폭탄과 화학·세균 무기로 무장한 117만 북한군이 어떤 움직임을 보일지 예상하기 어렵다. 그때는 북에서 벌어지는 사태 하나 하나가 한반도 통일과 7500만 민족의 운명을 좌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번 사태는 그것이 더 이상 가상 시나리오나 먼 훗날의 일이 아니라 지금 당장이라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설지도 모를 필연적 사태라는 점을 증명하고 있다.

그 현실 앞에서 우리의 외교적·군사적·경제적 대비 태세를 되돌아 보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우리 앞길을 막아설 나라는 중국일 것이다. 중국은 자유 민주주의 체제와 압록강에서 국경을 맞대게 되는 사태를 피하려 할 가능성이 높다. 중국이 북한 급변 시 대규모 병력을 압록·두만강의 국경선에 포진시킨다는 계획을 수립했다는 설(說)은 이미 여러 차례 흘러나왔다. 우리는 한반도 통일이 중국의 안보와 외교·내정(內政)에 결코 해가 되지 않고 득이 된다는 사실을 설득할 수 있는 논리와 그 논리를 전달할 수 있는 용량이 큰 대화 파이프를 설치해 두어야 한다.

중국의 방향 전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나라는 결국 미국이다. 동독의 국경선이 뚫리고 동·서 베를린을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크게 요동칠 때 소련 중무장 군대의 개입을 억제한 최대의 견제 요소가 미국이었고, 독일은 이걸 토대로 해서 소련을 설득해 통일을 이뤘다. 북한 급변 사태 때 미국이 이런 역할을 선뜻 떠맡고 나설 수 있도록 한미 동맹을 굳건히 하고 대한민국과 미국·중국의 3각 대화 또는 이를 확대한 대한민국과 미국·중국·러시아·일본의 5자 대화가 한반도 통일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 있도록 우리의 4강 외교를 획기적으로 강화해놓지 않으면 안 된다.

김정일 유고(有故)는 대한민국 최대의 비상 사태다. 그 위험한 순간 순간을 관리할 국가적 매뉴얼이 '충무계획'이다. 정부는 충무계획을 계속 보완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비상 사태를 눈앞의 현실로 인식하고 치밀하게 점검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 유고 사태 때 군사적 대응 계획인 '개념계획 5029'를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 서랍 속에 넣어버렸다. 이제는 이를 '작전계획'으로 격상하고 실질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될 때가 됐다.

우리는 북한 급변사태가 통일을 가져온다 해도 엄청난 경제적 부담으로 돌아오고 그것은 상당 기간 한국 경제 전체를 짓누르는 무거운 짐이 될 것이란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보다 몇 배의 경제력을 가진 유럽 최강대국 서독이 과도한 통일 부담으로 오랜 기간 허덕여왔다는 점만 보아도 그렇다. 그래도 그 부담을 피할 수는 없다. 우리가 경제를 키우고 성장시켜야 할 절박한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지금의 북한 체제는 일시에 무너지든, 서서히 변화하든 한시적(限時的) 운명을 지닌 존재다. 그 운명적 시기가 한 발 한 발 다가서고 있다. 결정적 순간이 왔을 때 우리가 그것을 민족사적 기회로 기록되게 할 것인지, 아니면 역사에 씻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통한(痛恨)으로 만들고 말 것인지는 우리들 자신에 달렸다.
조선일보 입력 : 2008.09.10 22:24 / 수정 : 2008.09.10 2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