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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 옳은 말 한 사람이 사과해야 하는 민주당

 

조선일보
입력 2022.05.28 03:24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5월 2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대국민 호소 기자회견 중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민주당 박지현 비대위원장이 최근 “대선 패배 이후 당이 달라진 게 없다”며 ‘586세대(운동권) 의원 용퇴론’ 등을 제기한 것에 대해 27일 사과 입장을 밝혔다. 박 위원장은 페이스북에 “민주당 후보들께 정중히 사과드린다”며 “특히 마음 상하셨을 윤호중 공동 위원장께도 사과드린다”고 했다.

박 위원장은 지난 24일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내로남불의 오명을 벗고 민주당을 팬덤 정당이 아니라 대중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586세대 용퇴 등 젊은 민주당으로 가야 한다”고 했었다. 하지만 윤 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등 586세대 운동권 당 지도부를 비롯한 대다수 의원들의 공격이 쏟아졌다. 당 회의에서 이들이 일제히 박 위원장을 몰아세우고 윤 위원장이 책상을 치고 회의장을 나가기까지 하자 박 위원장은 “그렇다면 왜 저를 뽑아서 여기에 앉혀 놓으셨냐”고 항변하기도 했다.

‘개딸’ 등으로 불리는 극렬 지지층들은 박 위원장을 향해 문자 폭탄 등을 보내며 “당장 나가라”고 압박했다. 박 위원장이 방송에서 “맹목적 비난, 성적인 희롱 등이 담긴 문자를 정말 많이 받았다”고 호소할 정도였다. 결국 박 위원장이 기자회견 사흘 만에 고개를 숙였다. 비대위원장의 상식적인 당 쇄신 요구가 당의 기득권층인 운동권 출신들과 극성 지지층의 겁박으로 묵살된 것이다.

‘변하지 않는 내로남불’, ‘반복되는 성폭력 사건’,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팬덤 정치’ 등 박 위원장의 당에 대한 지적은 틀린 게 없었다. 당이 대선에 패배하고 지방선거 직전 거듭되는 지지율 하락으로 위기감에 휩싸여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박용진·조응천 의원 등 일부를 제외하면 당내 대부분의 세력이 박 위원장의 혁신 요구를 짓밟거나 외면했다.

박 위원장은 ‘n번방 성착취’ 문제를 처음 공론화한 ‘추적단 불꽃’ 활동가 출신으로 대선을 앞두고 영입됐다. 정치 경험이 없었지만 대선 패배 이후 당을 대표하는 공동 비대위원장이 되면서 민주당의 고질적인 병폐에 대해 쓴소리를 거듭해왔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잘 보이지도 않는 민주당 초선 의원 79명보다 더 많은 국민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선거 직전 당 쇄신 요구는 사실상 좌절되고 말았다. 지금 민주당은 옳은 말을 한 사람이 사과해야 하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