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른소리

[사설]北 ‘고철’ 원자로 재가동, 그런다고 몸값 안 오른다

[사설]北 ‘고철’ 원자로 재가동, 그런다고 몸값 안 오른다

동아일보 입력 2021-08-31 00:00수정 2021-08-31 13:14

 

AP뉴시스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5MW 원자로를 재가동한 정황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포착됐다. IAEA는 연례이사회 보고서에서 “2018년 말부터 가동 징후가 없던 5MW 원자로가 올해 7월 초부터 냉각수 방출 등 재가동 징후를 보이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방사화학연구소도 5개월간 가동했다고 한다. 북한이 핵무기의 원료인 플루토늄 생산 프로그램을 본격적으로 재개한 것이다.

북한이 3년 가까이 중단했던 원자로를 재가동하는 것은 그간 주력했던 우라늄 외에 플루토늄 프로그램도 재개함으로써 두 가지 핵폭탄(우라늄탄과 플루토늄탄)을 함께 갖추겠다는 의도다. 북한은 원자로 가동을 통해 증폭핵분열탄(수소폭탄) 제조에 필요한 삼중수소도 확보할 수 있다. 이렇게 한층 위협적인 핵무기들을 고루 가진 핵보유국 위상을 과시함으로써 국제사회의 비핵화 요구를 무력화하겠다는 노림수일 수 있다.

 

그런데 북한은 핵 증강 의도를 보란 듯이 드러냈다. 원자로 가동을 통한 플루토늄 프로그램은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보다 핵무기 원료의 생산 효율이 떨어지고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든다. 위성사진 등을 통해 외부에 쉽게 노출되는데도 거리낌 없이 재가동 움직임을 과시했다. 미국에 위협의 수위를 높이면서 동시에 협상을 압박하려는 저강도 도발 시위인 것이다.

 

영변 원자로는 방사능 유출마저 우려되는 위험한 고철 덩어리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간 각종 핵합의에서 경수로 건설이나 경제적 보상을 받는 대가로 내놓은 거래 대상이 됐고, 한때 그에 딸린 냉각탑을 폭파하는 쇼까지 벌였다. 북한은 재작년에도 이 원자로를 포함한 영변 핵시설 폐기를 미국의 대북제재 해제와 맞바꾸려다가 실패했다. 북한은 이번에 또다시 원자로를 가동함으로써 협상 카드로서 영변 핵시설의 가치를 높여보겠다고 나섰다.

 

북한은 미국 새 행정부의 거듭된 대화 요구에도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제재 완화 같은 양보부터 얻어내려는 속셈이다. 이번 원자로 재가동 움직임도 국제사회에 대화가 시급하다는 여론을 부추겨 북핵을 정책 우선순위로 삼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상투적 수법이 또 통하겠는가. 북한의 공갈에는 이골이 난 미국이다. 조건 없는 대화를 촉구하면서도 대화 자체를 위한 보상도, 말뿐인 합의를 위한 보상도 있을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