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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부동산 정책 실패가 초래한 ‘사상 최대 가계 빚’

동아일보 입력 2021-02-24 00:00수정 2021-02-24 11:16

 

한국의 가계가 진 빚이 사상 최대 기록을 갈아 치웠다. ‘영끌’로 대출 받아 집을 사고, 주식에 ‘빚투’한 이들이 많아진 탓이다. 코로나19로 소득이 줄면서 생계 유지를 위해 빚을 늘릴 수밖에 없는 가계, 자영업자는 어쩔 수 없다 해도 경기침체 속에서 빚을 얻어 아파트를 구매하고, 주식시장에 뛰어드는 건 정상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은행은 작년 12월 말 현재 각종 금융기관에서 빌린 가계대출이 사상 최대인 1630조2000억 원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가계대출은 지난해 4분기에만 분기 기준 역대 최대인 44조5000억 원이나 증가했는데 그중 주택담보대출이 20조2000억 원, 신용대출을 포함한 기타대출이 24조2000억 원이었다. 금융당국이 대출을 옥죄는데도 어떻게든 빚을 내 집을 사고, 대출 받아 증시에 투자한 사람들이 급증했다는 뜻이다.

이런 가운데 빚에 따른 ‘자산의 양극화’는 심화하고 있다. “영끌로 집 사는 게 안타깝다”며 주택 구입을 만류하는 정부 말을 무시하고 빚 내 집을 산 사람들은 수억 원씩 오른 집값을 확인하며 안도한다. 반면 대출조차 받기 힘든 서민들은 높아진 집값, 전셋값에 외곽으로 떠밀리고 있다. 밀리지 않고 버티려는 세입자들은 급등한 전셋값, 월세를 부담하기 위해 또 빚을 져야 한다. 멀어진 내 집 마련 꿈을 주식 대박으로 보상받으려는 청년들이 늘면서 올해 1월 5대 시중은행에선 4만3000개의 마이너스통장이 개설됐고 신용대출도 급증했다.

 

폭증한 가계대출은 25차례 대책에도 집값이 안정될 것이란 믿음을 주지 못한 정부의 부동산 정책, 정치적 득실을 따져가며 개인투자자들의 눈치만 살피는 증시 대책이 낳은 결과다. 머잖아 선진국의 경기 회복이 가시화하고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면 급증하는 이자 부담에 눌려 파산하는 가구가 속출하고 전체 금융시스템에도 큰 충격이 올 수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가계 빚 급증에 제동을 걸기 위해 거시적 관점에서 부동산, 금융 정책을 총체적으로 재점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