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독일 슈피겔지(誌)가 러시아 에너지에 예속돼버린 독일의 처지를 한탄하는 특집 기사를 실었다. 슈피겔은 “독일 정치권이 경제 협력을 통한 대(對)러시아 관계 개선이 평화로 이어진다는 단꿈에 빠졌다. 독일은 그렇게 푸틴의 덫에 빠졌다”며 “경제 협력을 통해 공산 독재 국가와 신뢰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믿음은 오판이었다”고 썼다. 천연가스의 55%를 러시아에 의존하게 되면서 러시아의 보복 위협에 쩔쩔매는 현 상황에 대한 처절한 반성문이다. 러시아는 독일이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 동참하자 보복 조치로 천연가스 공급을 줄이기 시작했고, 대체 에너지를 찾지 못한 독일은 일부 산업의 셧다운(운영 중단)과 가스 배급제까지 검토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중국 시장에 대한 과도한 의존으로 ‘중국 리스크’를 짊어지고 있는 한국의 상황도 독일과 크게 다르지 않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은 급팽창하는 중국 시장에 올라타 성장의 과실을 누렸지만 동시에 중국 의존도도 기형적으로 커졌다. 전체 수출의 31%가 중국·홍콩으로 가고 있어, 수출 비중 2위인 미국 15%의 두 배에 달한다. 의류·화장품·생활용품 산업은 대중 수출 비율이 60~80%에 달한다. 수입도 다르지 않다. 우리가 사들이는 수입품 6개 중 1개는 중국에서 80% 이상 수입하는 제품이다. 한국의 주력 산업인 배터리 생산용 희토류는 9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에 경제의 목줄이 잡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중국이 오염물질 저감제인 요소수 공급을 줄이자 디젤 트럭 운행이 중단되고 물류가 차질을 빚었던 일은 한국이 처한 상황을 보여준다.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된 중국은 본질적으로 공산당 독재 국가다. 자기 뜻에 어긋나면 거침없이 보복의 칼자루를 휘두른다. 특히 한국은 무역 보복이 잘 통하는 나라라는 인식까지 갖고 있다. 2000년 중국산 마늘 수입을 금지하자 한국산 휴대폰 수입 금지로 보복한 이래 틈만 나면 무역 보복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17년 사드 사태 땐 아무 관계도 없는 롯데그룹을 공격해 중국 사업을 접게 만들고, 한한령(한류 금지령)을 내려 국내 관광산업에 20여조원의 피해를 주었다. 문재인 정권은 이런 중국에 굴복해 ‘작은 나라’ 운운하며 5년 내내 저자세를 계속했다. 시장경제 도입 초기 중국은 간까지 빼줄 듯하며 한국 기업을 유치하고는 자국 기업이 자리를 잡은 뒤엔 보조금 차별 등 각종 불공정 거래 행위로 한국 기업을 고사시키고 있다.
중국은 공산당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하는 국가다. 법은 허울일 뿐이다. 이런 나라에 경제적으로 의존하면 독일 같은 처지로 전락할 수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이 당장은 매력적일지 몰라도 공산 독재 국가는 언제든 심각한 리스크로 돌변한다. 어렵더라도 수출 시장·수입선 다변화를 통해 중국 의존도를 줄여 나가야 한다. 중국이 희토류 수출 금지로 보복하자 동남아 등으로 수입선을 교체한 일본, 인도와의 교역 확대로 돌파구를 찾은 호주가 대안을 보여주고 있다. 새로운 세계 질서는 핵심 가치를 공유하는 가치 동맹 중심으로 재편될 것이다. 자유 민주 등 핵심 가치에 대한 위협엔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주권과 자유에 대한 수호 의지와 함께 정부 기업의 치밀하고 꾸준한 노력이 시작돼야 한다. 중국이 무역 보복으로 한국을 움직일 수 없다고 판단하게 될 때 건강한 한중 관계가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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