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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 국민이 위협과 침략에 맞설 결의 있으면 세계가 돕는다

[사설] 국민이 위협과 침략에 맞설 결의 있으면 세계가 돕는다

조선일보
입력 2022.03.01 03:26
 
27일(현지 시각) 독일 수도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앞을 가득 메운 시민들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지지를 표명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이고 있다./AP 연합뉴스

미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까지 개시 후 수일 안에 수도 키예프가 함락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서방국가들이 침공 직후 말로만 러시아를 규탄하고 직접 군사 지원에 소극적이었던 것도 우크라이나 국민이 무력하게 굴복할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하지만 침공 일주일이 다가오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가 러시아의 국제 결제망 퇴출, 푸틴 대통령의 개인 자산 동결 등 강력한 금융 제재를 단행한 데 이어 미사일과 전투기, 레이더, 대전차 무기, 총기 등 군수 지원에도 착수했다고 한다.

상황이 이처럼 달라진 것은 우크라이나 국민의 결사 항전 때문이다. 러시아군은 15만이 넘는 병력을 투입하고 미사일 320발 이상을 발사하면서 강하게 밀어붙였지만 우크라이나군과 다수 국민의 필사적 저항으로 수도를 쉽게 점령하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인접한 폴란드 국경에선 침략군과 싸우려 피란 행렬과 반대로 귀국 행렬에 오른 우크라이나인이 줄을 잇고 있다고 한다. 한쪽 다리가 의족인 장애인까지 총을 들었다. 청장년 13만명이 자원 입대했고 입대하지 않은 국민은 화염병을 만들어 시가전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한국의 여당 대선 후보가 “6개월 초보 정치인”이라고 조롱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서방의 국외 피신 제안에도 수도 키예프에 남아 ‘결사 항전’의 뜻을 담은 영상을 연일 올리면서 국민의 저항을 독려하고 있다. 자국민은 물론 한국을 비롯한 세계 시민들까지 기부와 반전 시위로 응답하고 있다. 정치 지도자를 구심점으로 단단히 뭉친 우크라이나의 항전 의지가 국제 여론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경제 제재에 국내 여론까지 악화되면서 국민의 전쟁 의지가 흔들리는 쪽은 러시아라고 한다. 압도적 전력 차이 때문에 수도는 언제든 함락될 수 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국민의 의지를 꺾지 못하는 한 러시아의 점령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정부는 미국에서 군수 장비를 무려 100조원어치 지원받고도 미군 철수 발표 넉 달 만에 탈레반에 항복했다. 탈레반이 몰려오자 대통령부터 해외로 도망쳤고 30만 정부군은 미국이 지원한 첨단 장비를 내팽개치고 순식간에 흩어졌다. 어떤 국민이 이런 정부와 군을 대신해 화염병을 들겠는가. 어떤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런 국민을 구하겠는가. 강대국의 침략에 응전하는 우크라이나를 바라보면서 정치 지도자의 용기와 국민 의지의 중요성을 다시 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