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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우크라 대통령은 조롱하고, 러 제재엔 미온적” 비판받는 대한민국

[사설] “우크라 대통령은 조롱하고, 러 제재엔 미온적” 비판받는 대한민국

조선일보
입력 2022.02.28 03:26
 
 
우크라이나에서 2015년 방송된 공익광고의 한 장면. '우리도 한국처럼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 /유튜브

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와 여당 정치인들의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 침공을 자초했다는 식의 발언이 논란을 빚고 있다. 이 후보는 TV 토론에서 “6개월 초보 정치인이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돼서, 나토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충돌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공동 선대위원장인 박용진 의원은 “잠깐 인기 얻어 대통령이 된 코미디언 출신”이라고 했고, 추미애 전 법무장관은 “대통령 잘못 뽑는 바람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거주 네티즌이 영미권 커뮤니티에 “한국의 집권당 대선 후보가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러시아를 자극해서 전쟁을 촉발시켰다’고 말했다”고 소개하자, 각국 네티즌들은 “일본의 한국 침략도 한국 탓이냐”고 이 후보 발언을 문제 삼았다.

MBC 유튜브 채널 엠빅은 “우크라이나 대통령, 위기의 리더십”이라는 영상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은 정치 경험이 전무한 코미디언 출신”이라며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로 아마추어 같은 그의 정치 행보도 비판받고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우크라이나 출신 모델은 “젤렌스키를 지지하고 투표한 우크라이나 국민 72%는 바보라고 생각하느냐”며 MBC를 “오만한 언론”이라고 했다.

미 전문가들은 과거 침략의 피해자로서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던 한국이 러시아 제재에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 가운데 유일하게 대러 제재를 유보했다가 러시아의 전면 침공이 임박하자 동참 의사를 밝혔고, 독자 제재엔 선을 그었다. 미 국무부 핵 확산 금지 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마크 패츠패트릭은 “한국의 소심하고 미온적인 접근은 부끄럽고 수치스러운 일”이라며 “한국은 과거 침략의 대대적인 피해자로서 과거 대대적인 원조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스콧 스나이더 미국외교협회 한·미 정책국장도 “한국은 진정으로 물러서지 않아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국제사회는 러시아의 침공에 분노하면서, 목숨을 걸고 저항에 나선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응원과 격려를 보내고 있다.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의 피신 권유를 뿌리치고 수도 키예프에 남아 국가적 항전을 지휘하는 모습도 그의 지도력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한다. 한국의 집권 세력이 우크라이나의 비극을 야당 대선 후보를 비판하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이 국제사회에 어떻게 비칠 것인가. 북한의 침공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극복해낸 한국이 우크라이나가 처한 똑같은 위협을 외면하는 태도는 또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가. 우크라이나 사태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