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2021.03.01 03:24 | 수정 2021.03.01 03:24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이 김학의 전 차관 불법 출국 금지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한 혐의로 검찰의 소환 통보를 수차례 받고도 모두 불응하면서 ‘검찰은 수사에서 손을 떼고 사건을 공수처에 넘기라’고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공수처법에 검사의 범죄 혐의를 발견한 수사 기관은 그 사건을 공수처에 이첩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으니 검찰이 이를 어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김 전 차관을 출국 금지하려고 위조 공문서를 동원한 혐의가 있는 이규원 검사도 같은 이유로 ‘사건을 빨리 공수처로 보내달라’고 했다고 한다.
이 지검장은 문재인 대통령의 수족으로 그동안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채널A 사건, 옵티머스 펀드 사기 등 정권 불법에 대한 검찰 수사를 뭉개는 방패 역할을 해왔다. 이번에는 본인이 불법 혐의로 수사받게 되자 검찰을 향해 나무라 듯 ‘법을 잘 지켜야 한다’며 빠져나가려 한다.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드는 격이다.
이 지검장 요구대로 하면 김 전 차관 불법 출금 관련 수사는 장기간 중단될 수밖에 없다. 지난 1월 출범한 공수처는 처장, 차장만 있고 검사, 수사관을 아직 뽑지 못했다. 오는 4월 검사, 수사관이 임명돼도 기록 검토를 거쳐 본격 수사에 착수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공수처를 제외한 다른 수사 기관이 관련 수사를 할 수 없다면 사건 관련자들은 증거 인멸, 회유와 협박, 말맞추기 등에 필요한 시간을 벌게 된다.
또 공수처 수사관들은 친문 성향의 민변 변호사들이 주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이 지검장과 이 검사는 대통령 뜻을 받드는 과정에서 저지른 자신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공수처가 솜방망이 처분을 내려줄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을 것이다. 두 사람뿐 아니라 검찰 수사 대상인 이 정권 내부 범법자들은 너도나도 “공수처에서 수사해달라”고 손들고 나올 것이 뻔한 수순이다. 검찰 수사를 받지 않고 공수처라는 성역으로 도피해 면죄부를 받겠다는 것이다.
공수처는 출범 전부터 ‘정권 호위용'이라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 지검장 수사 뭉개기가 ‘공수처 1호 사건’이 된다면 의혹은 사실로 확인될 것이다. 공수처는 다른 수사기관으로부터 고위공직자 범죄 수사를 이첩받을 수도 있지만 공직자 수사를 다른 수사기관에 다시 이첩할 수도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선거를 앞두고 공수처가 (정치적) 중립성 논란을 자초하는 일은 피할 것”이라고 했다. 이 약속에 진심이 담겨 있었는지 국민은 지켜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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