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4.19 당시 학생 시위를 주도했던 각계 원로 50여명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148번째 생일이던 지난 26일 국립서울현충원에 있는 이 전 대통령 묘에 참배했다. 63년만의 역사적 화해였다. [연합뉴스]
80대 4·19 주역 50여 명, 63년 만에 첫 묘역 참배
통합 메시지 살려 기념관 건립으로도 이어지길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1875~1965)의 148번째 생일이던 그제 오전 이승만 전 대통령과 프란체스카 여사가 영면하고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에서 숙연한 장면이 연출됐다. 20대 대학생 시절 “독재자 이승만 물러나라”를 외쳤던 50여 명의 4·19 학생 시위 주역들이 이 전 대통령 묘에 참배했다. 63년 만의 뜻깊은 역사적 화해였다.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 박범진 전 국회의원, 현승일 전 국민대 총장, 이재후 김앤장 대표 변호사, 이경재 전 방송통신위원장 등 백발이 성성한 각계 원로 50여 명이 함께했다. 서울대 정치학과 3학년 재학 시절 4·19 학생 시위를 주도했던 이영일 전 국회의원은 “과오도 뚜렷하지만 초대 대통령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지향의 정부 수립을 주도한 점, 6·25전쟁 이후 한미상호방위조약을 맺어 경제 발전이 가능한 안보 토대를 마련한 점 등은 분명한 공적”이라고 평가했다. 손병두 전 KBS 이사장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그렸던 이 전 대통령의 정신과 부정선거를 거부했던 4·19 세대의 정신이 갈등할 이유가 없다”고 참배의 이유를 설명했다.
이날의 화해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의 양자인 이인수씨 등이 2011년 서울 강북구 수유리에 있는 국립 4·19민주묘지를 찾아 참배·헌화하려다 무산됐다. 1960년 당시 희생자와 유족에게 사죄 성명을 발표하려 했으나 일부 4·19 단체 회원들의 저지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 4·19 주도 세력의 현충원 참배도 소모적 갈등을 가급적 피하고 국민 통합을 도모하자는 원로들의 세심한 배려로 일반에는 사전 공개하지 않았다는 후문이다.
마침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가칭) 건립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나와서 4·19혁명 세대의 역사적 화해 시도의 의미가 더욱 커졌다. 박민식 보훈처 장관은 이 전 대통령 생일 기념식에서 “자유 대한민국의 초석을 마련했다는 역사적 사실만으로도 ‘공칠과삼(功七過三)’이 아니라 ‘공팔과이(功八過二)’로도 부족하다”고 재평가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보훈처는 서울에 후보지 3곳을 잠정 압축했고 오는 6월 보훈부 승격 출범식에 맞춰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건국 대통령의 변변한 기념관 하나 없는 참담한 상황에 마침표가 찍히게 된 것이다.
이 전 대통령은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항일운동에 헌신했고,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했다. 특히 1953년 한·미 동맹을 성사시켜 경제 발전의 토대를 굳건히 한 공로가 크다. 올해 한·미 동맹 70주년의 역사적 시점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고 화해와 통합의 길로 가자고 선언하며 만들어 낸 국가적 에너지를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으로 잘 이어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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