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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평론

[이기홍 칼럼]한일관계 결단… “이완용” 선동 뚫고 열매 맺어야

 

입력 2023-03-17 03:00업데이트 2023-03-17 03:29
 
징용해법 “친일 매국” 비난하는 野 대안은 뭔가
3자변제 속상하지만 현실에선 다른 해법 힘들어
신냉전시대 국익 위해 정치적 손해 감수한 尹
피해자·국민과 진솔하게 대화해 이해 넓혀야
이기홍 대기자
출근길 버스정류장 너머 교차로에 ‘이완용의 부활인가’라는 더불어민주당 현수막이 펄럭인다. “삼전도의 굴욕”을 외치는 확성기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대안은 무엇인가?”

한일관계는 제쳐 두고 따져보자.

징용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일본 기업의 한국 내 자산 현금화밖에는 없다. 그런데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의 한국 내 자산을 다 압류해도 턱없이 부족하다. 일본제철의 한국법인인 PNR의 자본금은 390억5000만 원으로 포스코가 70%, 일본제철이 30% 지분을 갖고 있다. 일본제철이 보유한 주식은 액면가 기준 110억 원 어치인데 확정 판결이 나온 피해자 15명 이외에도 소송 대기자가 약 1000명에 달한다. 1인당 1억 원씩이면 최소 1000억 원은 있어야 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선택지는 3가지로 제한된다. ①3자 변제로 지급 ②일본의 태도변화 기다리기 ③국제 중재위 회부다. ②는 가능성이 거의 0%고, ③은 이미 문재인 정부가 내찬 바 있다. 전쟁을 해서 일본 내 자산을 뺏어오지 않는 한 3자 변제 외에는 방법이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3자 변제는 ‘셀프배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존심 상하고 분통 터지는 일이다.

이렇게 선택지가 빈약한 상황을 만든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사법자제’라는 기본을 어긴 대법관,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뻔뻔함을 논외로 치고 국내적 책임을 따져보면 책임의 상당 부분은 문재인 정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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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김능환 대법관의 “건국하는 심정” 판결이 나왔을 당시 이명박 정부 외교부 내에선 “큰 폭탄이 던져졌다”는 우려가 컸다는 게 당시 직원들의 증언이다. 외교 책임자가 공식 입장문을 내서 대법원 판결이 국제법과 어떻게 배치되는지 명확하게 밝혔어야 마땅하다. 하지만 다들 문제를 외면했다. ‘당장 터질 폭탄은 아니다’며 눈 감은 것이다. 박근혜 정부 때도 시간만 흘러갔다. 한국 외교의 후진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상황을 최악으로 내몬 것은 문재인 정권이었다. 2018년 대법원 확정 판결이 나오자 일본은 한일협정에 명기된 분쟁조정 절차에 따라 양자협의를 요구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대법원이 판결한 것인데 무슨 협의냐며 거부했다. 일본은 그러면 절차대로 국제 중재위로 가자고 제안했다. 문 대통령은 또 거부했다.

중재위 회부는 패소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지만 4, 5년은 걸릴 중재위에 문제를 맡겨 버리고 한일관계는 이전과 마찬가지로 이어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김능환을 중재위 담당 팀장으로 모시자”는 농담까지 돌았다.

삼권분립도 중요하지만 대통령은 국가를 대표하는 자리다. 국내 판결과 국제법 사이에서 딜레마에 처한 상황을 국민에게 설명하고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문 전 대통령은 삼권분립만 강조하며 욕 안 먹는 편한 선택만 했다.

여전히 좌파 일각에선 1991년 일본 외무성 조약국장 발언,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등을 근거로 “일본도 징용 피해자의 개인 청구권이 살아 있다고 인정한다”고 주장하며 한국 정부를 공격한다.

하지만 이는 전체 맥락을 보지 않은 것이다. 일본 외무성이나 최고재판소의 입장은 “국가가 합의했어도 개인이 갖는 인간 기본권으로서의 청구권은 막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청구권은 충족될 수 없으며 재판에 호소할 수 없다”는 게 전체 맥락이다.

2007년 일본 최고재판소는 “개인 청구권이라는 실체적 권리는 있지만 1972년 중일 공동성명 제5항(전쟁 배상 청구 포기)으로 인해 재판상 권리는 상실했다”며 중국인 노동자들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한국 좌파 인사들은 “청구권이 있다”는 대목만 강조한다.

일본의 이런 입장이 분노를 유발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일관된 현실이어서 한국 피해자들이 일본에서 제기한 소송은 다 패소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이런 현실 속에서 택한 고육책은 정치적 불이익을 감수하고 국익을 생각한 어려운 결단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것이다.

신냉전 시대 한미동맹 강화는 우리의 절대명제이고, 미국이 강력히 희망하는 한미일 공조 강화를 외면할 수는 없다. 국내외 친중 세력들이 필사적으로 한일관계 회복을 비난하는 것도 바로 그걸 저지하기 위해서다.

다만 징용 배상 문제에서 해법의 내용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떤 과정을 거쳐 해법을 도출하느냐는 ‘어떻게’였는데 이 부분이 소홀했다. 정부 출범 초기, 윤 대통령이 진보 보수를 망라해 전직 국회의장들, 총리들, 외교 분야 석학 등을 모아 “100일 동안 논의해 해법을 내주시면 무조건 따르겠다”고 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결론은 지금과 대동소이했을 텐데 상당수 중도층은 현실적으로 이 길밖에 없다며 씁쓸히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정치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과정을 소홀히 한 채 민감한 이슈를 서둘러 결론 내린 것은 아쉽지만, 대통령으로선 어려운 주사위를 던졌다. 한일관계의 파탄을 원한다는 점에서 이해관계가 상통하는 한국 좌파와 일본 내 극우세력은 계속 발목을 잡을 것이다.

결국 윤석열 해법이 지속 가능해지고 성공할 유일한 길은 국민과의 소통 뿐이다. 윤 대통령이 피해자를 포함해 국민과 끝없이 대화해야 한다. TV 생중계 공개토론을 몇 번이고 해야 한다. “왜 우리가 물어주죠”라는 의문에 진솔하게 불가피성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왜 판결대로 이행할 수 없는지, 이행하면 무슨 문제가 있는지 정면으로 얘기하고,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고육책임을 설득해야 한다.

낡은 죽창가 필름을 되돌리는 야당과 좌파의 선동에는 냉철하고 정교한 논리로 대응하되 국민의 상처받은 자존심에는 진정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한일관계는 단칼로 모든 엉킴을 풀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스스로 움직여 비비 꼬여가는 실타래처럼 곳곳에 복병이 도사리고 있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낸 뒤에도 정교하게 하나하나 공들여 관리하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이기홍 대기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