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시각] ‘백선엽 공적’ 외면하는 사람들
입력 2021.07.12 03:00
지난 9일 6·25전쟁 영웅 백선엽(1920~2020) 장군 1주기 행사는 국가가 아닌 민간이 주관했다. 전·현직 한미연합사령관 8명이 추모에 나섰지만, 주무 책임자 국가보훈처장은 불참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인사말에서 백 장군이 다부동 전투에서 한반도 공산화를 막아낸 핵심 공적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한미 동맹의 뿌리이자 상징’ 같은 말은 그래서 진정성이 없었다. 추모 행사의 격(格)과 국무위원의 공허한 추모사는 백 장군과 6·25에 대한 현 정부의 시각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9일 오전 경북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서 열린 고 백선엽 장군 별세 1주기 추모행사에서 (왼쪽부터)김정수 육군 제2작전사령관,서욱 국방부장관,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 정승조 한미동맹재단 회장이 헌화,분향을 마치고 경례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6·25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과 여권의 시각은 86 운동권 바이블인 ‘해방 전후사의 인식’(해전사)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해전사는 분단과 전쟁 책임이 북한과 소련보다는 한국과 미국에 있다고 봤다. ‘남침 유도설’ 같은 황당한 주장까지 소개했다. 이 세계관에서 대한민국은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채 6·25를 통해 정통성 없는 국체(國體)를 유지해온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다. 최근 ‘해방군·점령군’ 논쟁도 같은 선상에 있다. 그래서일까. 백 장군의 ‘친일’ 논란은 한껏 부각하되, 그가 전공을 세운 6·25는 외면한다.
문 대통령은 그간 현충일, 6·25 메시지 등에서 북한의 전쟁 책임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해 6·25 70주년 기념사에서 “6·25는 오늘의 우리를 만든 전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이승만 전 대통령의 한미상호방위조약(1954)을 초석으로 70년 경제 부흥을 이뤘음을 말하지 않았다. 미국과 방위조약을 맺은 비(非)나토 국가 5국 중 필리핀을 제외하면 모두 국민소득 3만달러 이상 선진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이라는 사실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국은 지난해 단둥에 ‘항미원조 기념관’을 열었다. 안내판에서 미국을 ‘침략군’이라고 표현했고 ‘북·중 혈맹’을 강조했다. 북한 김일성이 중공군에 준 선물까지 전시해놨다. 중국 시진핑 국가주석은 “항미원조 전쟁에서 중·조 양국 인민·군대는 피로 위대한 우의를 맺었고 미군의 불패 신화를 깨뜨렸다”고 했다. 미국에서도 그간 2차 세계 대전과 베트남 전쟁에 밀려 ‘잊힌 전쟁’으로 여겨져온 6·25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5월 한미정상회담 때 94세 6·25 노병을 백악관에 초청해 무릎을 꿇었던 것이 그 예다.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6·25역사관은 한·미, 북·중 동맹의 결집력을 가늠하는 시금석이 되고 있다. 미·중은 조만간 한국 정치권에 질문을 던질 것이다. ‘6·25는 어떤 전쟁이었나?’ 이는 ‘백선엽은 누구였나?’라는 물음과도 직결된다. 현 여권은 어떻게 답할까. 백 장군 1주기를 대하는 태도를 보면 짐작이 된다. 6·25가 정작 한국에서 ‘잊힌 전쟁’이 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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