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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 국방

세계 최강 미군의 야반도주…장갑차도 버리고 아프간 떠났다

세계 최강 미군의 야반도주…장갑차도 버리고 아프간 떠났다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1.07.10 05:00 수정 2021.07.10 08:44

 

기자

이철재 기자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의 픽: 미군 철수

세계 최강이라는 미군이 자존심을 잔뜩 구겼다.
 

미군과 나토군이 철수한 아프가니스탄의 바그람 공군 기지. EPA=연합



지난 2일(이하 현지시간) 한밤중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공군기지에서 갑자기 철수한 것이다. 사실상 야반도주다. 바그람 기지의 아프간군 사령관인 미르 아사둘라 코히스타니 장군은 “미군이 떠난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미군이 떠난 지 2시간이 지난 다음 날인 3일 오전 7시에서야 이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프간은 전혀 몰랐다는 얘기다.
 
미국은 할 말이 있다. 8월 31일 아프간에서 미군 병력을 완전히 빼기 전 바그람 기지에서 나가겠다고 두루뭉술하게 발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프간에 정확한 일정을 감춘 건 사실이다. 아프간은 뒤통수를 맞은 셈이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서 북쪽으로 45㎞ 떨어진 바그람 기지는 미국의 아프간 개입의 상징과 같았다. 2001년 9ㆍ11 테러 직후 미국은 주범인 오사마 빈라덴과 그의 조직인 알카에다를 잡겠다며 아프간을 침공했다. 이후 바그람 기지엔 미군과 함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ㆍ나토)군이 대규모로 주둔했다.
 
미국은 빈라덴과 알카에다를 옹호했던 탈레반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쫓아냈다. 그러나, 미국이 이라크 전쟁에 한눈을 판 사이 탈레반은 다시 힘을 되찾았다. 탈레반은 아프간을 야금야금 탈환했다.
 
미국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병력과 장비, 돈을 투입했지만, 탈레반을 간신히 막는 상황이었다. 결국 미국은 지난해 2월 29일 탈레반과 평화 협정을 맺었다. 아프간 정부는 이 협상에 끼지도 못했다.


미군이 급하게 떠나면서 바그람 공군 기지에 남겨둔 차량들. AP=연합

 
 
그리고 조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4월 14일 ‘영원한 전쟁’을 끝내겠다며 미군의 아프간 철수를 명령했다. 영원한 전쟁은 미국에서 아프간 전쟁을 일컫는 말이다.
 
미군은 바그람 기지에 물병에서부터 차량, 장갑차 등 각종 물품 350만 개를 버리고 갔다. 아프간 민간인들이 기지에 난입해 이를 약탈했다.  
 
아프간 정부는 허망하다. 정부와 군대 모두 부패했고, 탈레반과 싸울 힘도 없다. 탈레반은 5일 하루 동안 아프간의 11개 행정지구를 함락시켰다. 아프간 정부군은 카불 주변과 일부 대도시를 간신히 지켜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비난이 일자 “우리는 국가 건설을 위해 아프간에 간 것이 아니다”라면서 “아프간 사람들의 미래와 국가를 어떻게 운영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아프간 국민만의 권리이자 책임”이라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아프간 전쟁을 베트남 전쟁과 겹쳐 보기 시작한 이유다. 1975년 사이공(지금의 호찌민시) 미국 대사관 옥상에서 헬기에 매달려 탈출하는 장면을 카불에서 다시 보는 건 시간문제인 듯하다.
 
한국에도 적지 않은 의미를 준다. 미군의 바그람 기지 야반도주는 국제정치에서 영원한 동맹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 주는 사례다.  
 
한국은 미ㆍ중 대결 국면에서 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지기 때문에 미국이 한반도에서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건 오산일 수 있다. 미국은 늘 주판알을 퉁기며 주한미군의 값어치를 계산할 것이다. 그리고, 비용이 효과를 앞서는 순간 주저 없이 뺄 것이다.
 

아프가나스탄 상인이 바그람 공군 기지에서 미군이 남겨둔 물건을 가져와 파는 상점. 로이터=연합



한국은 미국과 공통의 이해를 넓히고 이를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동맹에만 의존하지 않도록 스스로 지킬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만 한다. 베트남과 아프간처럼 앉아서 당하지 않으려면 말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세계 최강 미군의 야반도주…장갑차도 버리고 아프간 떠났다 [뉴스원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