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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성추행 피해자마저 외면한 여가부, 존재 이유가 뭔가

[사설] 성추행 피해자마저 외면한 여가부, 존재 이유가 뭔가

조선일보

입력 2021.07.12 03:24

 

발언하는 김재련 변호사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의 피해자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가 “여성가족부 무용(無用)론 주장에 기름을 부은 여성계 인사들이 있는데 그들의 권력화가 폐지 논의에 힘을 실어준 것”이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개인적으로 여가부 폐지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정치권 일각의 여가부 폐지 주장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취지였다. “박원순 사건을 대리하며 성폭력 이슈의 정치화에 맞서야 할 사람들의 비겁한 침묵을 목도했다”며 “성폭력 이슈에 씌워진 정치적 진영의 장막을 걷어치우라”고도 했다.

박 전 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추행 사건 당시 여가부는 스스로의 존재 근거를 의심하게 만드는 행태로 일관했다. 박 전 시장 사건이 알려지고 닷새가 지나서야 “고소인에 대한 2차 가해가 중단돼야 한다”는 입장문을 냈고, ‘고소인’이란 표현이 논란이 되자 다시 이틀 뒤 마지못해 “고소인은 관련법상 피해자가 맞는다”고 했다. 당시 장관은 국회에 나와 “두 사건이 권력형 성범죄가 맞느냐”는 의원들 질문에 “아직 수사 중인 사건”이라며 세 차례나 답변을 피했다. 그러더니 ‘잘못이 있으면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까지 바꿔가며 민주당이 서울·부산 시장선거에 참여키로 하자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집단학습을 할 기회”라는 궤변까지 늘어놓았다.

여가부는 “2차 피해를 막아 달라”는 피해자 측의 2차례 공식 요청을 묵살한 것으로도 확인됐다. 여가부 전체가 여성을 상대로 한 두 전직 시장의 파렴치한 범죄 행위를 덮으려 했던 정권의 방패막이 구실을 했다는 비판을 들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여가부는 안희정 전 충남지사, 문재인 대통령 친구인 연극연출가 이윤택씨 등의 성범죄 사실이 알려진 2018년 미투 운동 당시에도 미온적 대처로 논란을 빚었다. 현 정권 들어 거듭 여성을 ‘배신’하고 있는 여가부의 행태는 정치화된 여성운동단체들의 ‘놀이터’가 돼버린 현실 때문이다. 여성단체연합을 통해 3명의 여가부 장관이 나왔고 수많은 여성 의원이 배출됐지만 정권 주류로 진입한 이들은 패거리의 정치적 이득을 위해 여성의 권리를 무시하는 게 일상이 됐다. 성추행 피해자마저 외면하는 여가부라면, 존재 이유가 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