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2021.03.19 03:26 | 수정 2021.03.19 03:26
한국과 미국의 외교·국방장관이 18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5년 만에 열린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은 희한한 모습으로 끝났다. 지금 한미 동맹의 최대 현안은 북핵이다. 김정은은 전술핵 개발까지 공언한 상태다. 그런데 이날 한미 공동 성명에는 눈을 씻고 봐도 ‘비핵화’란 말이 단 한마디도 없었다. “북 핵·탄도미사일 문제가 우선 관심사이고 해결한다”고만 했다. 5년 전 공동 성명에선 모든 핵과 탄도미사일의 완전한 폐기를 촉구하며 “비핵화를 위한 북 압박”을 명시했다. 지난 5년간 북은 수소폭탄에 이어 요격이 어려운 탄도미사일까지 성공했다. 북핵이 훨씬 심각해졌는데도 한미 성명에 ‘비핵화’란 말조차 쓰지 못한 것이다. 이 이상한 일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로 벌어진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미국은 16일 일본과 외교·국방장관 회담 성명에서 “완전한 북 비핵화”를 명시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주도한 ‘쿼드’ 정상회의 성명에도 이 문구를 넣었다. 그런데도 한미 성명에만 ‘비핵화’가 빠진 것은 한국 측에서 그렇게 요구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입장은 대통령만이 정할 수 있다. 미국 측은 한국과 첫 대면에서 마찰음을 낼 수 없었을 것이다. 대신 블링컨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북 비핵화에 전념해야 한다” “북 비핵화를 위해 동맹과 협력할 것”이라고 했다.
북한 인권과 중국 문제도 마찬가지다. 5년 전 성명에는 “북 인권 침해”가 담겼지만 이번엔 빠졌다. 그러자 블링컨 장관은 기자 회견에서 “북 주민이 광범위한 학대와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한미 성명에는 ‘중국’이란 단어도 없지만 미 장관들은 한국에 오자마자 ‘중국 위협’과 ‘반중(反中) 전선’을 강조했다. 중국공산당의 홍콩 억압과 위구르족 인권 탄압도 공개 비판했다.
북핵의 가장 큰 피해국이자 실질적인 유일 피해국이 한국이다. 이런 처지에 미국이 ‘북 비핵화’란 말을 빼자고 해도 한국이 넣자고 해야 정상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북 비핵화'란 말을 빼자고 했다. ‘왜 빠졌느냐'는 질문에 한국 외교부는 “분량 제한 때문”이라고 했다.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이렇게 해서 김정은 쇼를 다시 한번 하고, 그걸로 대선에서 승리하는 게 이 정권의 목표일 것이다. 이들은 머지않아 북핵 묵인과 방조의 본색을 드러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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