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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 공공주도로 83만 가구 공급, 가능한 일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2021.02.06 00:21 | 723호 30면 지면보기

 

 

궤도 수정은 다행이지만 여전히 우려스럽다. 정부가 지난 4일 발표한 ‘공공주도 3080+ 대도시권 주택공급 획기적 확대방안(2·4 부동산 대책)’과 관련한 대체적인 시장의 반응이다. 2025년까지 서울 32만호를 비롯해 전국에 83만6000가구의 신규 주택을 공급한다는 게 핵심이다.
 

정부, 서울 32만호 등 25번째 부동산 대책
공급선회 긍정적이나 민간 빠져 실현 의문
규제완화 방안 동반해야 시장 신뢰 얻어

문재인 정부 들어 24번의 실패 끝에 나온 이번 2·4 대책은 수요를 무시한 채 규제 일변도 강공책만 퍼부었던 과거와 달리 늦게나마 시장이 원하는 공급 정책으로 선회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또 공공임대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총 물량 가운데 70~80%를 공공분양주택(아파트)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도 시장에서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단 공급 물량만 보면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공급 쇼크 수준”이라는 자평에 토를 달기 어렵다. 그런데 시장에서는 환호보다 신중한 목소리가 더 우세하다. 여기엔 서울에서만 분당 신도시 3개, 다시 말해 강남 3구 아파트를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32만호의 주택을 5년 내 짓기가 녹록지 않다는 현실론이 깔려있다.
 
속도도 물론 관건이지만 문 정부가 부동산정책과 관련해 워낙 신뢰를 잃은 탓에 이 숫자 상당수가 결국 허수로 끝날 것이라는 우려도 크다. 오는 4월 보궐선거 승리를 위해 급조한 선거용 대책이라는 의혹마저 나온다. “1년 남은 정부가 10년 뒤에나 시장에 풀릴 주택 숫자까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하며 발표를 서둘렀다”는 뒷말이 무성한 이유다.
 
이번 대책을 주도한 변창흠 국토부 장관도 뾰족한 답변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는 실제 공급까지 장시간 소요되는데 오히려 시장을 더 과열시키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시장에 충분한 물량이 저렴한 가격으로 지속 공급될 것이라는 신뢰가 형성된다면 문제없을 것”이라는 원론적 답변만 내놓았다.
 
정부는 사업 속도 단축을 위해 주민 동의율을 낮춰 현행의 4분의 3이 아니라 3분의 2만 동의하면 한국토지주택공사(LH)·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등 공기업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에 직접 뛰어들어 사업·분양계획을 수립하는 방식으로 평균 13년 걸리는 정비사업 기간을 5년 이내로 단축할 수 있다고 공언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와 같은 공공 주도 패스트트랙 제도가 시장의 불안 심리를 부추기는 동시에 재산권 침해 논란을 일으켜 실효성을 떨어뜨린다는 지적도 있다. 사실상 정부가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주민의 땅이나 권리까지 손쉽게 빼앗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개발 과정에서의 재산권 침해도 문제지만 공급의 주체를 공공으로 한정해 주택공급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민간 개발을 배제한 것 역시 한계로 지적된다. 공공재건축은 사실 이번에 완전히 새롭게 등장한 개념이 아니라 지난해 8·4 대책에서도 이미 언급한 바 있다. 그리고 모두가 알다시피 외면받았다.
 
이번에는 민간 참여를 높이기 위해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나 조합원 2년 실거주 의무 면제와 같은 더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지만 과연 적절한 유인책이 될지 미지수다. 분양가 규제나 세금 중과 정책을 그대로 둔 채 공급 대책만 발표한 탓이다.
 
83만 가구 공급이라는 장밋빛 전망을 거둬내고 보면 결국 이번 대책 역시 민간아파트 재건축 시장까지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큰 틀에서 보면 시장간섭이라는 같은 기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그래서 나온다. 또다시 26번째 도돌이표 정책이 나오지 않으려면 집값 폭등을 야기했던 기존의 규제를 완화하는 동시에 시장에 믿고 맡기는 정책으로의 선회가 필요하다. 그래야 집값도 잡고 국민의 주거 불안도 해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