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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무대

정책 모조리 뒤엎는 'AB 文' 아니었다…예상 깬 권영세 한마디 [뉴스원샷]

정책 모조리 뒤엎는 'AB 文' 아니었다…예상 깬 권영세 한마디 [뉴스원샷]

중앙일보

입력 2022.05.14 05:00

업데이트 2022.05.14 10:07

 

권영세 통일부장관 후보자가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유지혜 외교안보팀장의 픽 : 권영세 후보자 인사청문회 

이맘때쯤이면 들리기 마련인 AB▲. 이는 ‘Anything But ▲’의 약자다. 쉽게 말하면 ‘▲만 빼고’나 ‘▲ 지우기’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정부가 교체될 때마다 전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은 무조건 배제하거나 뒤집는다는 뜻으로 쓰이곤 한다.

사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정책에서도 ‘AB문’을 예상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가 모든 외교‧안보 정책의 중심을 북한에만 두는 데서 비롯되는 문제점을 후보 시절부터 신랄하게 지적해 왔기 때문이다.

실제 문 정부는 대미관계나 대중관계는 물론이고 다른 국제관계와 관련한 사안들을 판단할 때도 북한과의 관계 개선이나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는지를 우선적 기준으로 판단해왔다. 이로 인한 왜곡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났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2일 인사청문회에서 윤 정부의 남북관계를 책임질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내놓은 답변들은 ‘AB문’이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13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을 임명했다. 다만 청문회 내용을 다룬 본 기사에서는 청문회 당시 직함인 ‘권 후보자’로 표기한다.)

“못 되라고 수립한 대북정책 있겠나” 

문재인 정부에서 이뤄진 남북 간 합의물인 2018년 4‧27 판문점 선언, 9‧19 평양 선언 등이 새 정부에서도 유효할 것인지 묻자 권 후보자는 이렇게 답했다.

 

일단은 전체적으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그 합의는 새 정부에서도 계속해서 유효할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합의서를 액면 그대로 우리가 이행하기는 쉽지 않은 부분이 있는 게, 제재에 의해서 현실적으로 이행이 불가능하거나 현재 남북관계상 국민 여론 상으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에 있어서는 이행에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 두 번째)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 두 번째)이 2018년 4월 27일 남북 정상회담에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권 후보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행정부 당시 북‧미 간 합의물인 2018년 6‧12 싱가포르 성명에 대해서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존중한다고 했고, 우리도 존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대북 정책은 ‘이어달리기’로 가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이런 발언도 했다.

전임 정부들의 모든 것(대북정책)을 안고 갈 수는 없지만, (역대)대통령이 대북정책을 수립하면서 못 되라고 수립한 분은 한 분도 없을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니까 장점은 장점대로 받아들이고 미흡했던 점은 우리가 보완을 해 나가면서 가는 게 필요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와 박근혜 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를 합치면 제일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이게 신뢰가 있어야지 평화가 이뤄지는 거거든요.”

듣기에 따라서는 권 후보자의 발언에서 방점이 기존 합의의 ‘미흡한 점’이나 ‘현실적 이행의 불가능’에 찍혔다고 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말로는 이어달리기를 하겠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이를 핑계로 계승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권 후보자가 “지금은 제재의 시간”이라며 윤 정부의 선(先) 비핵화 원칙을 다시 명확히 확인한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전혀 다른 성향의 이전 정부가 일궈낸 대북 결과물을 존중하고 유효하게 이어 간다는 대원칙을 밝힌 건 의미가 크다.

김정은 직접 서명 비핵화 문서 의미 

사실 판문점 선언이나 싱가포르 성명은 비핵화 측면에서 보자면 아쉬움이 많은 합의다. 내용은 물론이고 문안의 순서 구성부터 분량까지, 가장 핵심인 북한의 비핵화가 중심에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러 결점이 있음에도 이를 존중하고, 이를 공식 합의로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다. 북한의 최고 지도자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직접 비핵화를 약속하고 서명한, 사실상 유일무이한 역사적 기록이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합의 당시, 그리고 앞으로 이를 지키려는 진정성이 있느냐는 별론으로 치더라도 그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만일 권 후보자를 비롯한 윤 정부의 외교‧안보 라인 인사들이 이런 합의물을 부정하는 것에서 시작했다면, 오히려 북한이 무분별한 도발을 하는 빌미나 명분을 줬을 수 있다. “약속을 어긴 건 남조선”이라고 몰아갈 게 뻔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잔디마당에서 열린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국내 야권에서도 벌써부터 윤 정부의 대북 접근법이 강경 일변도라거나 이명박 정부의 ‘비핵‧개방‧3000’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권 후보자의 ‘이어달리기’론은 적어도 어떻게 해나갈지 일단 지켜보자는 기대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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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내에는 북한 문제를 다루는 부처가 여럿 있고,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도 모두 다르다. 외교부는 비핵화 외교의 상대로, 국방부는 주적으로, 국정원은 방첩의 대상으로 본다. 이런 다양한 입장이 견제와 균형을 만들어내며 대북 정책이 수립되는 게 정상이다.

항상 화해 준비하는 보루는 통일부 

사실 지금처럼 북한이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우리를 위협하며 막무가내로 고강도 도발을 향해 갈 때 가장 고달픈 부처는 북한을 한민족 한 핏줄의 동족, 함께 공존해야 할 통일의 파트너로 보는 통일부일 것이다. 북한은 권 후보자에 대한 청문회가 진행 중이던 이날 오후에도 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을 했다.

하지만 이는 동시에 강 대 강 대결 국면에서도 꾸준히 북한과의 대화와 화해를 준비하는 보루는 통일부가 돼야 한다는 뜻도 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 후보자가 12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이재정 위원장 직무대행에게 선서문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 후보자는 장관이 되면 가장 먼저 북한에 “우선 무슨 이야기든 이야기 좀 하자는 제안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대화의 문을 열어놓겠다’고 언급한 윤 대통령의 취임사에 대해서도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서는 ‘문을 열어놓겠다’는 부분은 좀 소극적이고, 적극적으로 ‘대화를 제의하겠다’고 나왔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고도 말했다.

북한이 대남 핵 선제 사용 엄포를 놓고 핵실험을 준비하는 현시점에서 반 발짝 정도 빨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그게 ‘통일부 장관’ 후보자로서는 딱 맞는 속도일 것이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유지혜중앙일보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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