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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이야기

[박정훈 칼럼] 吳 시장은 왜 세운상가에 올라 ‘분노의 눈물’ 흘렸나

[박정훈 칼럼] 吳 시장은 왜 세운상가에 올라 ‘분노의 눈물’ 흘렸나

이념으로 폭주하는
운동권 정권이 바뀔 때
어떤 일이 생기는지,
왜 대다수 국민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지,
서울시의 오늘이
예고편처럼 보여주고 있다

입력 2021.12.17 00:00
1968년 준공 직후의 세운상가.

변방을 떠돌던 야인 시절, 오세훈 서울시장은 세운상가 앞을 지날 때마다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고 한다.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그는 시장에 첫 당선됐던 2006년, 세운상가군(群) 건물을 철거해 녹지화하는 계획을 세웠다. 주변 지역과 통합 개발해 종로에서 남산까지를 녹지 벨트로 잇는다는 도심 재창조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무상 급식 논란 끝에 그가 물러나고 박원순 시장이 당선되면서 계획이 뒤집혔다. 낡은 건물을 ‘보존’하는, 이른바 도시 재생 방식으로 전면 수정된 것이다.

개발 사업이 중단되면서 지은 지 50년 넘은 건물들은 흉물로 변해갔다. 주변 일대는 눈뜨고 보기 힘들 만큼 슬럼화가 진행됐다. 박 시장은 1000억원을 들여 건물들 사이로 공중 보행로까지 설치했다. 철거를 못하게 대못 박은 것이었다. 10년이 지난 뒤 오 시장이 다시 시정(市政)을 이어받았다. 그는 지난 가을 세운상가 옥상에 올라 폐허 같은 광경을 둘러보고는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박원순 시정은 ‘보존 지상주의’에 빠져 도심 쇠락을 방치했다. 그 사이 서울의 도시 경쟁력은 10위에서 17위로 추락했다. 그렇게 10년 세월을 허비한 전임자의 무책임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대못은 시정 곳곳에 박혀 있었다. 오 시장은 서울시가 시민단체의 자금줄로 전락한 사실을 확인하고 경악했다. 매년 1000억원 규모의 시 예산이 보조금이며 위탁금 명목으로 시민단체들에 지원되고 있었다. 제대로 된 타당성 심사나 검증도 없었다. 시민단체가 신청하면 사실상 자동 지급되는 시스템이 제도화되어 있었다. 그렇게 서울시에 줄을 댄 등록 시민단체가 2300개에 달했다. 인건비와 운영비 태반을 서울시에 의존하는 단체들이 수두룩했다. 오 시장은 이를 ‘현금인출기(ATM)’에 비유했다. 과장이 아니었다.

M사단법인이라는 마을 공동체 사업 단체가 있다. 박원순 시장 당선 이듬해 세워진 이 단체는 설립 4개월 뒤부터 서울시 지원을 받기 시작됐다. 마치 시가 돈 대줄 것을 알고 설립한 것 같았다. 이후 10년간 M법인이 지원받은 액수는 626억원에 달한다. 절반 이상이 임직원 인건비였다. 더 기막힌 것은 M법인의 사무국장 등이 이 사업을 담당하는 서울시 과장급으로 채용된 것이었다. 시민단체 사람이 공무원 자리에 들어앉아 자기가 몸담았던 단체에 예산 배정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돈 주는 자와 받는 자가 사실상 동일인이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말이 어울렸다.

 

다른 영역도 다르지 않았다. 박원순의 서울시는 ‘OO센터’라는 이름의 중개소 조직을 만들어 시민단체 업무를 위탁했다. 그런데 ‘OO센터’ 직원 대부분이 시민단체 출신이었다.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중개소에 들어가 자기가 일했던 단체에 돈을 주는 식이었다. 사업 공고를 낼 때부터 특정 단체를 전제로 한 규정을 만들거나, 시 내부 회의에 참여하는 단체를 사업자로 선정하는 등의 ‘내부 거래’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공정한 사업성 평가나 관리·감독이 이루어질 수 없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 세금 쓴 만큼 효과가 나올 리 없었다. 사회 주택 사업은 3500억원이 투입됐지만 공급 실적은 목표의 25%에 불과했다. 베란다 태양광 사업체 14곳은 118억원을 지원받고 3년도 안 돼 폐업해 ‘먹튀’ 논란을 불렀다. 61억원이 들어간 마을 생태계 사업은 요리·파티 같은 취미 활동의 밥값으로 쓰이는 게 고작이었다. 10년간 1조원이 시민단체와 관련 사업체에 투입됐지만 서울 시민들은 효과를 체감하지 못한다. 세금으로 시민단체 월급 주고 활동비 대 준 셈이 됐다.

오 시장은 내년 예산안에서 시민단체 지원금을 절반으로 잘라냈다. 정치적 편항성 논란을 빚은 TBS 출연금은 33% 삭감했다. 그러자 거센 반발이 일었다. 시민단체들이 연대 기구를 결성해 ‘반(反)오세훈 투쟁’을 선언했다. 여기에 이름 올린 단체가 1090개에 달했다. 서울시에 뿌리 박은 기득권 먹이사슬이 얼마나 광범위한지를 보여주는 숫자였다.

서울 시의회 의석의 90%를 차지한 민주당은 ‘오세훈표 예산’을 난도질했다. 예산안 심의에서 오 시장이 추진한 중점 사업비를 모조리 ‘0원’으로 삭감했다. 반면 시민단체 지원금은 원래대로 전액 부활시켰다. TBS 출연금은 도리어 13억원 증액까지 시켜 놓았다. ‘여소야대’의 쓴맛을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서울시는 이념 폭주하는 운동권 권력이 교체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주는 현장이다. 그것은 한마디로 비정상의 정상화다. ‘시민단체’를 ‘586 운동권’으로, ‘보존 집착’을 ‘부동산 아집’이나 ‘탈원전’으로 바꿔 쓰면 문재인 정권도 다르지 않다. 왜 절대다수 국민이 정권 교체를 바라는지, 서울시의 오늘이 예고편처럼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