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임수]부동산 실정 ‘남 탓’ 말고 과감한 정책 전환 나서야
정임수 경제부 차장 입력 2021-05-18 03:00수정 2021-05-18 05:55
정임수 경제부 차장
얼마 전 만난 정부 부처 고위공무원은 “부동산시장이 이 모양이 된 게 왜 관료 때문이냐”며 “뭐가 잘못돼 집값이 뛰었는지 제대로 살펴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또 다른 부처의 간부급 공무원은 “전담 부처가 없어서 부동산정책이 실패했나. 새 조직이 생기면 주택 공급이 늘어나느냐”며 혀를 찼다. 이들이 푸념을 쏟아낸 건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내놓은 부동산 발언과 구상 때문이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주 “시중에서 여당, 야당이 아닌 관당(官黨)이 나라를 통치한다는 말이 회자돼 왔다. 부동산정책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조한 ‘부동산으로 돈 벌 수 없게 하겠다’ 등의 말씀에 답이 있음에도 관료들이 신속하고 성실하게 미션을 수행했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기자회견에서 “죽비를 맞고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심판을 받았다”면서도 기존 부동산정책 기조를 유지할 뜻을 분명히 하자 이에 맞춰 책임을 관료사회로 돌린 것이다.
이를 두고 대선 라이벌인 정세균, 이낙연 전 총리를 공격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오자 이 전 총리 측은 “강 건너 불구경하는 것 같다”며 발끈했다. 이 전 총리는 주택 문제를 전담할 ‘주택지역개발부 신설’ 카드도 꺼내들었다. 정 전 총리도 “지자체도 반성하는 게 옳다”고 맞받아쳤다. 그러면서 “일단 가격이 안정될 때를 보며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준비해야 한다”며 앞뒤가 뒤바뀐 해법을 제시했다.
현 정권은 툭하면 부동산 실정(失政)의 책임을 전 정부 탓, 언론 탓으로 돌렸다. 이제는 여권의 대선주자들이 관료, 지자체, 정부 조직을 들먹이며 남 탓을 하는 모양새다. 4·7 재·보궐선거에서 확인된 ‘부동산 심판론’이 차기 대선에까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자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마저 나온다.
현 정부가 출범한 2017년 5월 6억 원을 소폭 웃돌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KB국민은행 기준)는 지난달 처음으로 11억 원을 넘어섰다. 서울 아파트 전셋값도 100주 연속 쉬지 않고 올랐다. 2005년 도입 때 주택 1% 미만에 ‘부유세’로 물리던 종합부동산세는 올해 서울 아파트 4채 중 1채가 내야 하는 ‘대중세’가 됐다. 주택 공급을 틀어막고 실수요자를 투기꾼 취급하며 징벌적 세금을 물리고 대출을 옥죄는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불러온 결과다.
차기 대통령이 되겠다는 유력 주자라면 엉뚱한 데로 책임을 돌리며 공방을 벌이는 대신 실효성 있는 해법과 비전을 앞세워 경쟁하는 게 바람직하다. 주택 취득부터 보유, 처분 전 단계에서 세 부담을 늘린 세제와 공공 위주의 공급 정책 등 시장 왜곡을 낳은 제도가 무엇인지 따져보고 대안을 제시하는 게 우선 돼야 한다. 늦었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에 규제 완화론자인 김진표 의원을 발탁해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보유세 부과 기준일(6월 1일)을 코앞에 두고도 청와대의 강경 기류에 밀려 여전히 우왕좌왕하고 있다. 4년간의 실패를 인정한다면, 집권 여당과 대선주자들은 땜질이 아닌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통해 국민의 부동산 고통을 덜어줘야 한다.
정임수 경제부 차장 im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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