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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소리

[사설] 불량 주사기, 백신 이상반응 국민 속이려 말라

조선일보

입력 2021.04.20 03:26 | 수정 2021.04.20 03:26

 

2021년 4월 16일 서울 강남구 일원동 일원에코센터에 설치된 코로나19 예방접종센터에서 의료진이 백신을 최소 잔여형 주사기에 옮기고 있다. /김지호 기자

방역 당국이 ‘최소 잔여형(LDS)’ 주사기에서 섬유질 이물질이 나올 가능성을 확인하고도 20일 만에야 사용 중지 조치를 내린 것으로 밝혀졌다. 더 큰 문제는 사용 중지 조치를 한 후에도 한 달 가까이 이 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알리지 않은 점이다.

식약처는 지난 2월 27일 불량 주사기를 공급한 제조 공장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고 시정 조치를 내렸다. 그러나 불량품 회수에 즉각 나서지 않았다. 주사기에 이물질이 있다는 신고가 늘어나자 20일이 지난 지난달 18일에야 아직 사용하지 않은 주사기 70만개를 회수했다. 그사이 이미 50만개는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에 이미 쓰인 후였다. 일부 전문가는 국내에서 AZ 이상 반응이 임상시험 때보다 심했던 것이 이 불량 주사기 이물질 때문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더구나 식약처는 불량 주사기를 회수한 지 한 달 가까이 지난 지난 17일 언론 보도 등이 나오기 전까지 이 같은 사실을 국민에게 전혀 알리지 않았다. 식약처는 “규정상 이물질 혼입은 공표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온 국민이 초미의 관심을 갖는 접종에 불량 주사기가 쓰였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은 것은 국민을 속인 것이나 다름없다. 식약처 차원에서 국민을 속이기로 했을 리는 없다. 결국 청와대 결정일 것이다. 질병관리청도 지난달 AZ 백신을 맞은 뒤 사망한 사람 가운데 혈전(血栓) 소견을 보인 사례가 우리나라에서 처음 나왔다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다가 5일 후에야 공개한 적이 있다. 국회에서 질문을 받고서야 시인한 것이다.

코로나 방역은 무엇보다 국민 신뢰가 중요하다. 그런데 방역 당국이 뭔가 쉬쉬하면서 숨기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만으로도 국민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고 이는 백신 접종률 하락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불량 주사기 문제나 혈전 이상 반응같이 민감한 문제일수록 즉각 공개해 여러 전문가들과 국민의 판단을 받는 것이 중요하다. 방역 당국은 오로지 국민 건강 하나만 보면서 관련 사항을 투명하게 공개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K 방역' 등 헛된 정치적 구호를 지키려고 국민을 속이려 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