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2022.08.06 00:20
업데이트 2022.08.07 08:36
[스무 고개, 수많은 이야기] 〈18〉 강원도 인제·고성 잇는 대간령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을 잇는 백두대간 고개 대간령(641m)을 현지 사람들은 새이령 또는 샛령으로 부른다. 진부령과 미시령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한 탐방객이 영동과 영서를 오간 관리들이 묵었던 원(院)터 근처를 지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원래는 이 길이 아니었다. 군부대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길을 막아버렸다. 하지만 긴요하면, 사람이 들락이면 길은 바위나 바다에도 생기고 만다. 그래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3리에서 대간령(大間嶺·641m)으로 향하는 길은, 1980년대 들어선 특공부대 때문에 물 위를 건너게 됐다. 강원도 인제와 고성을 잇는 백두대간 고개 대간령을 찾은 날, 유난히 물을 많이 만났다. 사나운 비에, 하늘 어딘가는 무너질듯했고 땅 어느 곳은 꺼질듯했다.
“아, 그니까, 쭉 그대로 가면 될 것을 왜 자꾸 일루 와?”
속칭 ‘알바(산길을 헤매며 고생함)’를 했다. 밭에서 김매던 할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아휴, 한 달에 50명은 이쪽으로 잘못 늠어 와.” 물 위에 난 길을 못 보고 지나쳐 미시령농산물직판장까지 흘러가고만 ‘알바생’들만 1년 500여 명. 그렇다면 길을 제대로 간 ‘정규직’까지 합하면, 대간령을 찾은 이가 많을 테다. 용대리에서 대간령으로 향하는 들머리격인 박달나무쉼터의 김복순(70) 사장은 “나는 자연 머인가 하는 방송에 여게(여기가) 나오더만, 사람이 겁나게 온다”고 말했다.
한계령 도로 개설 전 60년대까지 애용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새이령(대간령, 641m)으로 향하는 초입에 바위 틈이 뚫어진 창암바위가 있다. 김홍준 기자
대간령. 강원학연구센터에서는 지난해 12월 『굽이굽이 넘어가는 강원도 고갯길』이라는, 백두대간 고개를 북에서 남으로 짚는 책을 엮었다. 목차는 남한 최북단 백두대간 고갯길 진부령이 첫 번째요, 그다음이 대간령이다. 잘못 발음하면 책 여섯 번째로 나오는 ‘대관령’으로 들린다. 책에서도 그렇듯, 인제와 고성 사람들은 대간령 대신 ‘새이령’으로 부른다.
이 고개(이하 새이령)는 신선봉(1244m)과 마산봉(1052m) ‘사이’에, 진부령(520m)과 미시령(826m) ‘사이’에 있다. ‘사이’의 강원도 방원은 ‘새이’다. 진부령과 미시령, 그러니까 고개와 고개 사이에 있다고 해서 ‘새이령’이라고 부른다는 게 이곳 사람들의 말이다. 대간령은 예전 소파령(所坡嶺)으로도 불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은 ‘소파령은 석파령(石破嶺)이라고도 했다’고 쓰고 있다. 이식(1584∼1647)은 『수성지(1633)』에 ‘죽도와 토성 사람들이 영서로 갈 때 쓰던 지름길’이라고 기록했다. 그래서 지름길을 뜻하기도 하는 샛길은 새이령의 다른 이름인 ‘샛령’을 낳았다고 한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와 고성군을 잇는 백두대간 고개 새이령(641m) 의 용대리 방면 길은 유순하다. 하지만 이날(7월 13일)의 폭우로 마른 날에는 물이 흐르지 않던 곳에도 물이 흐르면서 크고 작은 개울을 서른두 번 건너야 했다. 김홍준 기자
고개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꽤 인기가 있었다. 1971년 한계령에 44번 국도가 깔리는 등 주변 도로가 정비되기 전, 1960년대까지는 말이다. 근처 주민들은 “진부령은 지루하고, 미시령은 짧지만 까다롭고, 한계령은 수려하지만 험악스럽고, 구룡령은 장쾌하지만 무겁다. 반면, 새이령은 참으로 부드럽다”며 주변 고개보다 인지도가 높았음을 밝히고 있다.
정말, 길이 부드럽다. 트레킹 맛에 막 빠진 이나, 아이 있는 가족이 와도 어렵지 않다. 하지만 사정 안 가린 장맛비는 박달나무쉼터부터 새이령까지, 마른날에는 볼 수 없는 도랑과 개울을 만들었다. 그보다 큰 내(川)와 개천까지 합쳐 물을 무려 서른두 번 건너야 했다. 미시령을 물이 이어진다는 연수파령(連水坡岺)이라고도 했으니, 그 못지않다. 그러다 문득, 걱정이 쏟아졌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새이령(대간령, 641m)으로 향하는 길은 인제천리길의 일부인데, 작은새이령(소간령)에는 트레킹 인증을 위한 스탬프 보관함이 있다. 김홍준 기자
“아, 이 정도로는 걱정 없어. 물이 크게 불어나지 않는다고.”
마장터에서 40여년간 살아온 백모(70)씨가 자신 있게 말했다. 고개에서는 이쪽과 저쪽의 사람이 오가고 이런저런 물건이 거래됐다. 새이령에서도 속초와 양양의 소금·고등어·미역이, 인제의 감자·콩·팥이 만나는 장이 섰다. 말 거래가 이뤄졌거나 말을 키웠다고 했으니, 마장(馬場)이라고 불렀고 지금은 터만 남아 마장터라고 한다.
그런데, 인제 쪽 사람들이 남은 장사를 했단다. 예전 강원도 산비탈 척박한 땅에서 자라는 농산물이 해산물보다 더 귀한 취급을 받으면서 영서 사람들이 더 많은 이윤을 남겼다는 것. 하여, 한 푼이라도 더 벌려던 속초·양양 사람들은 원통까지 질러가 해산물을 팔았다. 그런데, 축지법 쓰는 홍길동이 아닌 이상 당일치기가 안 되니, 이들이 머물게 된 마장터와 새이령 고갯마루에는 집 30여 채와 주막이 들어섰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새이령(대간령, 641m)으로 향하다 작은새이령(소간령)에 다다르면 작은 성황당을 볼 수 있다. 김홍준 기자
7월 한여름, 백두대간 고개 대간령(새이령)에서 만난 꽃.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꿀풀·개망초·동자꽃·아스틸베·하늘말나리·산꿩의다리. 김홍준 기자
마장터를 비롯해 고개 서쪽(영서)은 ‘밭갈애비’들의 땅이었다. 강원도에서는 논밭 가는 사람들을 ‘밭갈애비’ 혹은 ‘보애비’로 불렀다. 밭갈애비 기술의 정점은 화전 경작이었다. 밭이 비탈진 데다, 돌과 나무뿌리가 많아 소가 끄는 겨리연장(쟁기)을 기술적으로 써야 했기 때문이다. 인제·화천·양구·홍천 등 영서 중북부 지역은 화전 경작의 중심지였다.
우하영(1741~1812)이 『천일록』에 쓴다. ‘(강원도) 산골짜기에는 본디 황무지가 많아서 풀과 나무가 무성하고 빽빽하니, 묵정밭을 불태우고 경작하고 파종하며…(음력) 5~6월 사이 한 달 동안 장맛비가 오면 곡식이 모두 녹아버린다…강원도 산골만이 밭농사를 망치면 바로 유리도산하게 되어,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새이령(대간령, 641m)으로 향하던 중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을 많이 만난다. 이 낙엽송은 박정희 정부가 화전정리사업을 위해 1970년대 말 화전민을 이곳에서 이주시킨 뒤 그들이 살던 곳에 심은 것이다. 김홍준 기자
마장터에도 화전을 일군 밭갈애비들이 있었다. 그들도 고향을 떠나야 했다. 백씨는 “오면서 낙엽송은 보셨나”라며 운을 뗀 뒤 “그 나무들은 내가 1970년대 후반 이곳에 왔을 때 정부에서 화전민을 몰아내고 심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만 해도 밭갈애비들이 5명 있었고, 박정희 정부에서 화전정리사업을 하면서 갈 곳이 없어 내 집에 얹혀살다가 돌아가신 분들도 계셨다”고 덧붙였다. 40년 훌쩍 지났건만 어색한 악수를 하는 것처럼 여전히 주변과 어울리지 못하는 밭갈애비들의 집터, 경제개발 5개년 계획처럼 종대와 횡대를 맞춰 기립해 있는 낙엽송…. 푹신하고 유순한 길, 아찔하도록 아름답게 솟은 낙엽송에 역사 한 토막이 박혀 있었다.
국립공원공단이 간벌한 낙엽송으로 지은 백모씨의 마장터 건물. 국립공원의 허락을 받고 나무를 썼다고 한다. 김홍준 기자
최근 새이령이 뜬 이유 중에는 백씨의 귀틀집도 한몫했다. 박달나무쉼터를 벗어나자마자 핸드폰 안테나가 전혀 뜨지 않는 오지 중의 오지에, 백씨가 20년 전 국립공원공단에서 간벌한 낙엽송으로 지은 집은 분명 성지다. 그는 권위주의 정권이 싫어 40년 전 이곳에 들어왔다고 했다. 도중 10여년간 미국에서 생활하기도 했는데, 그에게서도 산업화와 민주화 사이 격랑 불던 현대사 몇 토막을 읽을 수 있다. 하지만 백씨는 “주유천하를 다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만간 이곳을 떠난다는 얘기다. 제집 드나들듯 불쑥불쑥 찾아오는 이가 많아 영 불편하단다.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와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를 잇는 대간령(새이령)에서 산림청 직원들이 제초작업을 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계곡 상류 세 갈래 물길이 만나는 곳에 있는 굴바위. 고성군청에 따르면, 높이 3.5m, 길이 5m, 폭 2.5m의 이 굴바위에는 예전 일가족이 살았고, 형편이 나아져서 나가면 다른 가족이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김홍준 기자
강원도 인제군과 고성군을 잇는 새이령(대간령, 641m) 고갯마루 직전의 돌무더기. 김홍준 기자
고개 너머 도원리로 향했다. 2005년 12월 새이령을 다룬 중앙일보 기사(이 기사는 ‘샛령’으로 표현)는 ‘길은 그 흔적이 희미하며, 이따금 가뭇없이 사라지기도 했다. 낙엽 더미에 옛길이 파묻힌 탓인데, 간간이 가슴 높이까지 차는 낙엽 더미 속에 몸이 빠졌다’고 쓰고 있다. 서울에 115㎜의 비가 내린 날, 낙엽 대신 물이 많았다. 시원했다. ‘겁나게 온다’는 사람은 없었다. 용대리 쪽 부드럽던 길은, 고갯마루 지나 도원리에 접어들면서 사납게 변했다.
고갯마루엔 말 거래한 마장터·집터도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 도원계곡의 선녀폭포. 김홍준 기자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리의 도원계곡은 소수의 사람들만 아는 비경을 간직하고 있다. 김홍준 기자
새이령 길은 설악산국립공원을 넘나든다. 하지만 강원 고성 사람들은 예로부터 미시령 북쪽 너머를 금강산으로 본다. 고성군 토성면 도원1리의 정해길(70)씨는 “금강산 1봉이 신선봉이요, 2봉은 마산봉”이라고 말했다. 밖에서는 설악산으로 부르지만, 안에서는 금강산으로 부르는 것이다.
설악산에는 다른 이름의 산이 촘촘히 나온다. 최원석 경상대 명산문화연구센터장은 “조선 시대에 울산바위는 천후산(天吼山), 한계령 이북은 한계산(寒溪山)이라고 불렀고 당시 설악산은 대청봉을 중심으로 한 곳”이라며 “조선 후기에 와서야 일부 문헌에서 설악산이라는 이름이 한계산·천후산을 포함한 대표 지명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신선봉과 점봉산(1424m)이 설악산국립공원으로 들어간 게 각각 2003년, 2011년이니, 설악산은 혼자가 아닌 것이다.
그래픽=양유정 yang.yujeong@joongang.co.kr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도원1리에 있는 무릉도원공원 내의 도자기체험장 건물은 한양으로 항아리를 팔러 가는 보부상 모습을 띠고 있다. 김홍준 기자
라이더들의 성지로 뜬 도원 임도를 지나 도원계곡에 들어섰다. 휴대전화 안테나가 5시간 만에 다시 떴다. 눈이 확 뜨였다. 이 계곡은 의외다. 손으로 빚고 칼로 썬 듯한 바위가 속되지 않은 짙푸른 물과 만난, 지나치기 힘든 비경이다. 고성군 토성면 아야진리에 사는 이창희(57)·정인경(59)씨 부부는 “집 앞의 아야진 바다도 좋지만, 뒤의 도원계곡은 정말 숨기고 싶은 곳”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도원’은 무릉도원에서 이름을 가져왔나 보다. 새이령 길이 막혀도 다시 만들어진 이유는 이런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용대리 박달나무쉼터에서 넓은 공터를 바로 지나 왼쪽의 징검다리를 찾아야 한다. 공터에서 직진하면 '알바(산에서 길을 헤맴)'로 직행하게 되니 유의해야 한다.
휴대전화 안테나가 전혀 뜨지 않으니 모바일 지도에 의지하다가는 큰일날 수 있다. 모바일 지도를 여러 장 캡처해 사진으로 저장해 놓거나 종이지도를 갖고 간다. 전화가 터지지 않으니 응급 상황에 대비, 새이령에 여러 번 온, 경험 많은 이들과 함께 가는 게 좋다. 새이령 고갯마루에서 안테나가 아주 잠깐 뜨는 휴대전화도 있지만 너무 믿지 않는 게 낫다.
강원도 인제군 용대리에서 새이령(대간령, 641m)을 넘어 고성군 도원리로 향하는 길 대부분에서 휴대전화 안테나가 전혀 뜨지 않는다. 오지(奧地) 중의 오지다. 김홍준 기자
대중교통을 이용하기가 벅차다. 일단 원통공용버스터미널까지 간 뒤 5번 버스를 타고 용대3리에서 내려 박달나무쉼터까지 간다. 고개를 넘어 도원리까지 5시간 걸린다. 도원리에서 다시 속초까지 내려가 대중교통 편으로 귀가한다.
자가용 이용 시 박달나무쉼터에 주차(주차비 5000원)를 한 뒤, 새이령을 찍고 되돌아 오면 4시간이면 족하다. 도원리로 넘어갈 경우 속초까지 내려가 한계휴게소로 향하는 버스를 탄 뒤 5번 버스로 환승해 용대3리로 되돌아온다.
가장 편한 방법은 인터넷 카페 산악회가 빌리는 버스로 가는 것. 버스가 산행 들머리(용대리)에 내려주고, 날머리(도원리)로 이동해 태워준다.
1박 뒤 산행하려면 들머리가 가까운 백담사 근처가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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